한 걸음 또 한 걸음

전문상담사 잇슈

by잇슈


인간이 타고난 행운과 불운을 저울에 달아서 재볼 수 있으면 어떨까.

그러면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고통들이 덮쳤을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안쓰러웠다. 마르고 가녀린 여성의 모습이. 그리고 여성의 사연이.


그때 흡 남편이 그렇게 또 전화로 그러니까 허억


공황장애 증상 중 하나인 과호흡. 그 증상 때문에 여성은 평범한 대화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말 중간중간에 호흡이 흡흡. 그러나 분명 공황장애 문제로 상담실 문을 두드렸는데. 여성이 경험한 과거는 그 무게의 차원이 달랐다. 마치 그 무게에 짓눌려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워진 사람처럼… 여성에게 삶이 주는 시련은 가혹했다.


이혼한 전 남편의 자살.

그것도 3년 전, 이혼 소송 시작 후부터 시작된 남편의 자살 협박이 끝내 현실이 되어버린 사건. 분명 남편의 잦은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성에게 연락해서 밥 먹자, 같이 살자 하던 남편은 죽어버릴 거라고 그렇게 3년을 협박을 하더니. 진짜 뛰어내려 버렸단다. 여성이 전화를 안 받아버린 그날에.


이혼 소송 때부터 시작된 공황장애 증상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심해졌고. 여성은 결국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죽음 이후 아이들을 똑바로 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자신이 마치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를 뺏어간 것 같은 죄바카라감 때문에. 여성의 삶은 모든 게 고통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숨 쉬는 그 순간마저도.


그러니 여성은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말했다.

죄바카라감을 느끼기 싫어요.


어떤 슬픔은 발가락 끝부터 서서히 차오른다는 걸. 그 여성을 만나 상담하며 느꼈다.

전문상담사로서 지나치게 내담자를 가엽게 여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큼이나 어려웠다. 여성의 이야기가 주는 슬픔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눈물 속을 헤엄치는 것과 그 안에 빠지는 건 분명 다른 일이니까.

자칫 감정에 휩쓸린 나 때문에 나와 여성이 둘 다 잠겨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서히 그 물살을 밀어내 보았다. 그리고 여성에게 손을 뻗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흔히 죄바카라감을 부정적 감정으로 인식하죠. 그러니까 그걸 느끼기 싫다고 해요.

하지만 사실 죄바카라감은 나를 지켜주는 또 다른 감정이기도 해요. 그거라도 느끼지 못하면,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거든요… 지금처럼요.


지그시 감기는 여성의 두 눈.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곧이어 여성의 입술이 벌어지며 하, 하고 쏟아지듯 뱉어낸 숨과 함께. 쏟아지는 그녀의 눈물들.


흐, 흐엉. 엉엉엉. 허엉. 헝헝 허엉. 허어엉.


작은 상담실에 꽉 들어 차고도 넘치는 수많은 감정의 편린들. 누구보다도 진득하게 얽히고설켜있던 그 복잡한 심정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상담사라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감히 공감하는 척도 하면 안 되는 법이기에. 그저 묵묵히 그 순간을 함께했다. 그게 그 순간의 최선이었다.


한 차례 여성의 울음이 잦아들 고난 후. 어느덧 그녀의 말을 자꾸 가로막던 과호흡 증상도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차분해진 여성이 입을 떼며 말하길. 사실 생각했단다. 자신은 죄바카라감을 느낄 자격도 없는 인간이라고. 그만큼 죄인이라고.


그 누구보다도 모질게 비난했단다.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 자신에게.


겉으로는 그래도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고 있지 않냐고, 자신을 응원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끊임없이 자기를 비난하며 괴로워했던 나날들. 그날을 기점으로 작별하기로 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딱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만 말이다.


말차라떼.jpg


작가의 이전글부모는 죽어서도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