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상담사 잇슈
뭔가 우울하냐, 그렇게 묻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내 앞에 앉은 대학생의 얼굴을 보니.
평소처럼 1시간도 더 걸리는 그 먼 거리에서부터 출발하여 제시간에 맞춰 상담실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그의 축 처진 눈썹과 눈꼬리는 조금이라도 올라갈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아픔이 계속 그를 짓누르고 있기에.
건장한 그의 체격이 한없이 작아 보일 정도로 그렇게 축 쳐져있는 것일까.
내가 그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았는데.
상담실에 올 때마다 고민해요. 오늘은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작은 목소리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그 말에. 그가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느껴지는 듯했다.
가정폭력 고위험군 대상자. 그가 처음 상담실에 내방했을 때, 내가 그를 분류했던 항목. 지나치게 오랜 세월 부모로부터 당한 가정폭력에 짓밟혀. 자신감이 부족하다 못해 없다고까지 할 정도의 상태가 된. 그런 그의 심적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첫마디였다.
남들이 일상적으로 건넬 수 있는 인사 하나도 그들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럴 수 있다고, 당신을 이해한다고 그렇게 답했다. 그러자 나의 그 말에 또 조금 더 용기가 생겼던지.
음… 저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이 지난주에 하셨던 말.
제가 지금 돈이 필요한 게 맞죠. 제 속옷까지 찢어질 정도인데… 그냥 입고 다니면서도 말도 못 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용돈을 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아버지가 주신다고도 했고. 근데… 근데…
무언가 다급한 사람처럼 자신의 말을 빠르게 이어가던 그는 잠시 그 행동을 멈추더니. 목이 매이는 듯, 꿀꺽 침을 삼켜냈다. 그러더니 뒤이어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정점을 찍어내듯.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어렸을 때부터 청소년기 때까지. 아버지한테 너무 맞아서 도저히 왜 맞았는지 혹은 어떻게 맞았는지 맞은 이유와 장면 중 어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다던 대학생. 고위험 가정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겪는 '해리(dissociation) 현상' 중 하나.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기억은 무의식에 묻어버리듯이. 그렇게 자신이 당한 폭력의 기억을 모두 무의식에 봉인해 버린 상태였던 그.
그런 그에게 자신의 가해자인 아버지가 보내준다는 경제적 지원은 오히려 괘씸할 뿐이었다.
그러니 용돈을 준다는 것조차도 화가 나서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을 수밖에.
또 그 돈으로 아버지가 당신의 잘못을 없던 것처럼 하려는 것 같다고. 자신에게는 아버지의 그 용돈 필요 없냐는 말이 그렇게 느껴진다며. 그의 아버지의 입버릇 중 하나가,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너는 자식으로서 내게 그따위냐는 말이다 보니. 그렇게 돈 주고 생색내는 듯한 아버지의 언어폭력이 너무나도 싫다고.
그로 인해 자신이 한없이 가난한 상황에서도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아, 결국 아버지로부터 오는 모든 걸 차단한 채 생활해 오던 내담자.
상담사인 내게는 그의 그 말이, 당신은 내 상처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냐고, 마치 그렇게 포효하듯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기에. 얼마나 아팠으면 저렇게까지 거부하게 됐을까. 감히 재단해선 안 되는 고통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또다시,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그럴 거라고 답해준 뒤. 잠시 동안 그의 눈물의 시간을 함께했다.
다섯 번 넘는 만남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듯 첫 눈물을 보인 그 앞에서.
그 눈물이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걸 지켜보며. 내 눈으로도 그의 모습을 마치 쓰다듬듯 바라보다가.
나는 여기서 계속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모든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인데… 너무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계속 폭력에 노출된 상태로 폭력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더라고요.
나지막이 상담실을 울리는 나의 목소리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은 채 나를 향하는 내담자의 두 눈동자. 그 시선을 올곧은 자세로 마주하며. 다시, 멈추지 않고.
우리는 자해라고 하면 손목을 긋거나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것만 떠올려요.
근데 어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해라는 건 자기를 해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그건 곧 나를 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고.
나에게 물이 필요할 때 물을 안 주고, 밥이 필요할 때 밥을 안 주고, 잠이 필요한데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것들.
상담실은 꽤 아담한 공간이다 보니. 내담자가 숨을 내쉬는 속도마저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나의 길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점차 그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단호함을 실은 눈빛으로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나에게 필요한 걸 주고 있을까요.
나는,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나요.
그 말을 끝으로.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지는 사람처럼 자신의 상체를 앞으로 고꾸라뜨리며 엉엉 울기 시작한 그의 모습.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그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로 그날의 상담 시간을 꽉 채우고 끝났다.
그렇게 내담자를 보낸 뒤. 그날 나는 한동안 멍한 시간을 보냈다. 그 상담 시간에 나를 뒤덮던 슬픔에 잠겨서.
어떤 날에는 상담이 끝난 이후에도 상담사가 내담자를 떠올리는 여운의 시간이 꽤 길기에. 그날도 그렇게 보내야 했다. 그렇게 울고 가서 몸은 아프지 않으려나, 마치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려나 어렴풋이 짐작만 해보며. 내담자로부터 나눠 받아, 내게 가져온 슬픔을 홀로 토닥여 주어야 했다.
한껏 웅크린 자세로 말이다.
그러나 그다음 주 상담 때. 처음 보는 듯한 함박웃음과 함께 상담실로 들어서던 그의 모습.
선생님 말씀처럼 아버지한테 용돈을 받아서 옷을 몇 벌 새로 샀다고. 아버지는 아직 밉지만. 돈에 여유가 생긴다는 게 이렇게 행복감을 줄 줄 몰랐노라고.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그의 얼굴.
그래. 대학생은 역시 그래야지 싶어서.
덕분에 내가 얼마나 안도했던지, 그 말은 전하지 못했다.
**이 사례는 내담자의 허락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