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상담사 잇슈
마치 주저앉듯 털썩하고 상담실 의자에 앉는 행동.
30도 정도 될까. 그 정도 각도로 살짝 늘어뜨린 어깨에서 자신이 얼마나 기력이 없는가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 무언가 패배라도 한 걸까. 내가 졌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청년의 자세가 보여주는 장면이 그랬다.
상담의 시작은 언제나 내담자에게 먼저. 그래서 그의 말을 기다려 보니.
사실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내담자도 상담실에서 완벽하게 솔직하거나 정직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사실은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다.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가정폭력 피해자가 맞다는 걸.
그러니까 말로는 항상 선생님 앞에서 제가 피해자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아니, 인정하기 싫었어요.
내담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그 앞에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알고 있었노라고. 그렇게 가만히 끄덕인 후 질문했다. 왜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으냐고.
다시 한번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진심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한심하고 불쌍해 보이니까.
저도 알아요. 피해자들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걸. 나쁜 건 저를 그렇게 때린 부모님이죠.
근데 그냥 그렇게 당한 게 멍청하고 한심해 보이니까. 불쌍하고.
그게 나쁜 게 아니란 건 아는데 그런데…
결국 청년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은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부모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자신이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청년. 하지만 그조차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닿기까지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불안한 마음으로 어딘가를 서성이던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그렇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더니.
제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어요…
뒤이어 이어지는 단어들도 자기 자신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말들 뿐.
그 어디에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듯한 말들은 없었다. 너무 깊게 박힌 가시들을 이제야 빼어내는 사람처럼. 얕은 신음 소리와 함께 한참을 그렇게. 청년은 간신히, 아주 힘겹게 자신을 아프게 했던 비관적인 생각들을 꺼내어 직접 두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아, 내가 이래서 아팠구나, 확인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한참을 고통에 조용히 신음하던 청년을 바라보다가. 한껏 지친 사람처럼 의자에 늘어지듯 기댄 채, 눈물이 거의 잦아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사실은, 이라는 말과 함께. 이제는 상담사가 전하고 싶은 진심 어린 말을 건네 보았다.
부모에게 사랑받은 기억도 있었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걸 인정하는 게 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 작게나마 떠오르는 사랑의 기억들이, 지금까지 당신을 살게 했을 테니까요.
네 맞아요 맞아요. 그렇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청년은 다시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말은 끝나지 않았기에. 한 마디를 더 붙여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사랑받은 사람이 맞아요… 분명히.
흑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두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덮어버리는 손짓.
상체를 들썩이기까지 하며, 온몸으로 울기 시작하는 청년.
부모를 닮아가는 듯한 자기 모습이 싫어서 상담실에 자기 발로 찾아왔던 청년이. 폭력 가정에서 자란 자신이 과연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잠 못 들던 청년이. 부모로 인한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끌어안은 채, 그날 그렇게 아프게 한참을 울었던 청년이. 그 후 결혼해서 자신만의 가정을 꾸린 건 안 비밀.
결혼 축하합니다. 사랑받은 사람아.
**이 사례는 내담자의 허락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