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슈
그날따라 남성의 질문이 이상했다.
평소 상담할 때와 다른 분위기였고, 그건 최근에 친해진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기 때문에 흥분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미묘한, 그러면서도 연약한 느낌.
마치 톡 하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선생님 눈썹 어디서 하셨어요?
계속 내 눈썹에 대해 질문하더니. 자기도 눈썹을 예쁘게 그리면, 사람들이 자신을 좀 덜 무서워하지 않겠냐고 허허실실. 그러더니 이내 자기 나이가 곧 칠십이라며, 남들이 주바카라맞게 보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혼자 질문했다가 답변했다가 하는 혼란스러움의 반복.
그 행동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 맞게 마주 웃어주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 자신도 소란스러운 마음이 잦아들었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 깔며 고요해졌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더니.
딸아이를 오랜만에 봤습니다. 내 기억 속에 그 아이는 요만했는데. 언제 그렇게 자랐던지.
그제야 아, 하고 내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듣기로는 철 모를 때 결혼했던 아내와 20대 때 후반에 헤어졌고. 그 이혼 사유가 남성의 연이은 사업 실패 등의 문제였다고 했었다. 그 후 아내가 아들 딸을 데리고 갔고. 아들하고는 가끔 만나기도 하고 연락도 했지만, 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던 그의 사연. 이혼 후에도 계속 자신은 다사다난하게 살다 보니. 그나마 사내아이인 아들은 보는 게 두렵지 않았는데. 딸에게는 그 모습을 보이기가 영 편치가 않았더라며. 그래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보지 못했었다고. 상담 첫날 말했던 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남성은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주름으로 자신의 눈에서 새어 나오는 눈물을 꽉 쥔 채.
내가 당구장을 했었어요, 그때. 근데 가게도 잘 안되고 그러니까. 시장 바닥 이런 데서 되는 대로 옷을 주워다 입혔단 말이야. 근데도 걔는 그저 좋다고, 아빠가 사줘서 좋다고, 그렇게 입고 다녔었어. 파란색 줄무늬가 있던 옷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 모습이 생생한데. 내 기억 속 내 딸은 그 몇 푼 안 되는 옷 걸치고도 좋다고 웃던 애였는데.
세월이 야속해서. 자신의 죄바카라감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흘려보낸 모든 시간들이 후회스러워서. 딸이 자라는 모습을 놓쳐버린 자기 자신이 너무 밉고 용서가 안 되니까. 그래서 엉엉 울어버렸다.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의 여성 상담사 앞에서. 아버지 뻘 되는 남성이 그 누구보다 가장 어린, 아주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꺼이꺼이. 한참을 울어버렸다.
그 모습을 마주 보며 눈을 잠시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끄덕.
당신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그 고통을 느끼는 시간을 내가 함께 하고 있다고.
내가 여기, 함께 있다고. 그렇게 몇 번을 끄덕끄덕.
그의 마음의 파도가 어느 정도 잦아들 때까지.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느 이혼 가정에서도 종종 보이고는 했던 이야기들.
아이가 보기 싫어서 혹은 아이를 잊어서가 아니라. 아이를 볼 낯이 없어서 찾을 수 없었던 어느 부모의 사연들.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무심코 발 닿는 대로 상담실 문을 두드렸던.
지금에라도 내 딸아이를 다시 만나도 될까, 그게 궁금해서 상담실을 찾았다는 남성.
다시 보란 듯이 성공해서 딸 앞에 서리라 결심했던 아버지는 어느새 노인이 되었고. 그렇게 지금 나이에도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여전히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그래서 차마 먼저 딸에게 보자고 연락할 용기가 없었지만. 아들이 결국 중간에서 딸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아버지도 이제 많이 늙으셨어.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네가 먼저 연락해 봐.
상담 중 내가 넌지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더란다. 혹시 아드님을 통해 따님을 볼 수는 없냐고 했던 작은 조언. 그때는 세차게 고개와 두 팔을 저어대더니. 자기가 없는 인생이 자기 아이들을 위하는 거라며 한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더니. 그리움의 무게를 끝내 이기지 못했나 보다.
남성은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는 그런 남성을 계속 지켜봐 주고.
그리고 우리는 마주 웃었다. 푸훗. 너무 울 것 같아서 웃음을 터뜨린.
그 의미를 서로만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