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억이 있었다

by잇슈


선생님도 때려도 돼요?


거친 숨을 헐떡이며, 소년은 내게 물었다.

상담실 테이블을 들어서 뒤엎고.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려 사방을 내려치고. 상담실 창문을 깨뜨리고. 바카라장도 조금 파손될 정도로 때려 부수던 아이.


와장창 쿵쾅 쾅 쾅 쾅.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다 부숴버리겠다는 듯 거침없는 파괴의 행위는 멈추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도 더 이상 두들겨 팰게 보이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에 띈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놀이치료 수업 시간에 배웠던 대사를 인용했다.

놀이치료에 온 아이들이 장난감을 망가 뜨리려고 할 때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배웠던. 지금은 그게 어떤 대화법이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때는 생존 본능이었나 보다.

그 순간 두꺼운 전공바카라의 한 구절이 떠올랐던 거 보면.


내 대답에 순간 멍해진 소년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고요한 상담실에 후 하 후우 하아 후우우 하아아. 아이의 숨소리만 울렸다. 점차 가라앉는 듯한 흥분의 음색. 그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더니. 아이는 이내 자신이 들고 있던 의자를 짜증스레 집어던지고 상담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씨발, 마치 침을 뱉듯 끝까지 욕 한 마디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은 채.


그리고 상담은 급하게 종결됐다. 기본 10회기로 약속된 상담이 3회기 만에 끝난 것이다.

교회에서 권사님을 통해 의뢰됐던 중학교 남자아이. 의뢰 사유는 그 아이가 같은 교회에서 자신보다 어리거나 작은 아이들한테 욕하고 가끔은 때리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심리학도 공부한 권사님이다 보니. 그 아이에게 넘치는 분노가 많다는 걸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나를 탓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말했다.


아이 때문에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근데 확실히 치료가 됐더라고요. 아이가 더 이상 욕을 안 하더라고요. 애들도 안 때리고요. 그때 그렇게 분노를 표출한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상황이 결론적으로는 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권사님은 아이를 설득해서 다시 상담을 재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의 거부 반응이 심했기에. 상담은 더 진행할 수 없었다.


상담에서의 헤어짐이란 언제나 그렇게 갑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상담사의 이별이란 게 그랬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전의 상담 경험이었다. 그때 나는 초보였고, 그래서 더 용감했던 것도 같다. 그러고도 그 아이를 계속 상담해야겠다 결심했던 걸 보면. 그리고 아직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제처럼, 법무부에서 내게 거칠게 저항하는 범죄자를 만났을 때.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프리랜서의 유일한 특권이 남들이 일하는 오후에 잠시 휴식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기에.

이 시간을 활용해서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상념에 잠긴다.


그 이후의 장면을 떠올리며.


우습게도. 그렇게 조기 종결된 상담이어도 일단 성공적인 상담이었다 보니. 그 교회에서 또 다른 아이의 상담을 연계받을 수 있었다.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던 어느 시골 어귀의 작은 교회에서 말이다.

그렇다 보니, 그때마다 그 아이를 다시 마주치기도 했다.


권사님의 말처럼 아이는 더 이상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만 보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지고는 했다. 내가 자기를 상담하러 다시 그 교회에 방문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열심히 나를 외면하기에 바빴다. 그게 나에게는 아주 작은 서운함도 꼬깃하게 올라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인 척 지나치길 몇 번.

그날도 여느 날처럼 상담이 끝난 후 다른 상담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마을버스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상했다. 그때 그 지역에는 마을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에 대한 알림 어플도 없었기에.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택시를 부르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의 시골이다 보니. 초조함에 좌우를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귓가에 들리는,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돌을 차며 다가오는 발소리.

퍽 지익 직 퍼억 직 직 퍽 지익 지이익. 돌을 차고, 운동화를 끌고. 또 돌을 걷어 차고, 운동화를 끌며 걷는 소리. 교회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기에. 교회의 아이들 중 내가 모르는 아이 중 하나일 거라 속으로 짐작만 했다. 교회의 아이들이 가끔 이 버스 정류장 근처를 지나서 집에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퍽 직 직 퍼억 떼구르르르르.

평소처럼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순간 내 머리 위로 떠오르는 작은 물음표.

돌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가까이 내 옆을 지나쳐 굴러갔다. 보통 아이들이 여기를 지나칠 때면,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횡단보도 근처로 갔다. 내가 자신들의 교회를 방문하는 상담사라는 걸 알기에 슬쩍 곁눈질로만 나를 볼 뿐. 내게 먼저 인사하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나의 곁에 바투 다가온 돌멩이 하나에 순간 흠칫 놀랐다.

버스를 기다리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고갯짓을 멈추고. 돌이 굴러온 방향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 아이였다. 상담실을 초토화시켜놓고, 나까지 때리고 싶다던 아이.

그렇게 내게서 도망치듯 상담을 강제 종결한 후. 여러 번 스치면서도 내게 눈길 한 번 안 주던 그 소년이.


조금 놀란 내가 굳은 채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이는 여전히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눈도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애꿎은 바닥만 노려보는 건가 싶었는데. 어느새 또 다른 돌멩이를 찾아서 발로 찼다. 퍽 직 직 퍽 퍼억 직 지익.

이제 다시 나랑 멀어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내게서 점점 거리를 벌리는 방향으로 돌을 차며 이동했다.

그럼 그렇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퍽 직. '버스' 퍽 직 직 직. '안 오는데!' 퍼억 데구르르르

아이의 마지막 말에 유독 힘이 실려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돌멩이가 진짜 멀리 날아갔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불현듯 깨닫게 된 죄바카라감. 아이가 걷어찬 돌멩이와 함께 날아가버린, 아이를 향한 내 안의 진짜 감정의 실체. 뒤늦게 아차하고 아이를 다시 똑바로 보려고 했지만.


이미 아이는 저만치 사라져 갔다. 점점이, 여전히 도망치듯이.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게 그 아이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날이 그 교회에서 두 번째로 연계받았던 또 다른 아이와의 상담도 끝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마주칠 기회는 없었다.


결국 전화로 콜택시를 부르고 나서야, 그곳을 떠나올 수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택시 오른쪽 뒷좌석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꼭 감은 채로. 목 울대로 눈물을 삼키며 말이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했어.


그 두 마디를 전하지 못한 게. 설움처럼 남아 목에 맺혀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가 상담사로서 부족해서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낸 그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도저히 잊혀지게 놓아줄 수 없었다.

그런 기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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