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아이들의 눈동자에 은하수가 흐른다고 믿었다.
내가 아이였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의 눈과 마주해 보니. 반짝반짝, 시도 때도 없이 빛나는 별들이 그 까만 우주 안에서 흘러넘치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름답다 느꼈고. 낮에도 별이 뜨는구나, 문득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아침 지옥철 좌석에 앉아 억지로 끌려가듯 온라인 게임에 다니는 듯 보였던 그들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성인 온라인 게임인들처럼.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되었다는 소년의 눈에는 어떤 꿈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삶에 대한 피곤과 체념. 그게 전부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해진 옷 사이로 드러나는 뼈 밖에 안 보이던 손목과 발목. 인터넷을 하다가 보았던 모 슬롯단체의 기아들처럼 가느다란. 대한민국의 중학교 남학생이 저렇게까지 앙상할 수도 있구나. 그런 애도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뭐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
얼결에 튀어나갈 뻔한 질문을 억눌렀다. 씁쓸했다.
상담사가 상담 수련을 통해 배우는 것 중에 하나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질문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어떤 대상자인가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그 질문은 절대 그 소년에게 하면 안 되는 질문이라는 것을.
담당 선생님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상담실에 끌려 온 아이.
전화로 의뢰를 받았을 때는. 학교에서 어떻게든 외부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게 해 주려고 노력한 학생이라고만 소개받았었다. 그래서 조금 궁금하긴 했다. 대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아이이기에. 처음에는 비행 청소년인가 물었지만. 그건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말만 돌려받았다. 그 아이가 복지 대상자라는 말과 함께.
직접 대면을 하니, 그제야 담당 선생님이 그 아이가 어떤 복지 대상자인지 알려주었다.
가족 돌봄 청소년. 그게 이 슬롯에서 소년을 부르는 호칭이라고.
어쨌든 나는 다른 내담자들에게 하듯이 그 아이를 상담할 때에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소년은 나를 볼 때마다 미간을 좁히고 한숨부터 쉴지라도.
그러다 세 번째 만나는 날. 결국 내가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상담받는 걸 귀찮아하느냐고.
그러자 소년은 대답했다.
바빠요. 아버지가 일하다 다쳐서 장애인이에요. 제가 돈 벌어야 해요. 여동생도 있어요. 아직 어려요. 그니까 제가 용돈 줘야 해요. 걔는 지금 돈 못 벌어요. 애예요 애.
마치 다른 집 가정사를 얘기하듯, 애가 애한테 애라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어디 사는 누군가의 사연이라는 듯이. 거기서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없는 건 나뿐인 것 같았지만.
아이의 말이 끝날 때 즈음. 문득 어떤 질문 하나가 가슴에서부터 불쑥 솟아 올라왔다. 왠지 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꼭 확인해야 할 것만 같아서. 물어봤다. 너희 어머니는...?
엄마요? 없어요. 죽었어요. 동생 낳고 아버지랑 바로 이혼하고 집 나갔는데. 갑자기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장례식 갔던 것만 기억나요. 얼굴도 모르겠어요.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러니까 소년은 너무 바쁜 게 맞았다.
온라인 게임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를 얻어 병상에 누운 아버지. 아직 초등학생인 여동생까지. 오롯이 소년이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고작 일주일에 단 한 번. 50분뿐인 시간일지라도. 소년은 그 시간에 상담을 받는 것보다 동네를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여기저기 재활용 수거 장소를 배회하다 보면, 쓸만한 물건들이 보일 때가 있어서. 그러면 자기는 그 물건을 갖다가 중고로 판매할 수 있으니까. 청소년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기에.
학교 담당 선생님이 말해준 사건이 떠올랐다.
애가 그래도 착하게 잘 자랐어요. 단지 돈이 필요해서. 남에 자전거 부품을 갖다가 잘못 팔아서 절도죄로 경찰서에 신고당했었어요. 걔는 그게 버려진 자전거인 줄 알았대요. 쓰레기장 근처에 자전거가 있었다나 봐요.
아이가 돈 때문에 또 실수를 할까 봐 걱정돼서. 그게 비행 청소년을 상담할 줄 아는 전문가를 찾은 이유였다고.
소년은 울지 않았지만. 소년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는 모두 눈물겨웠다.
우리가 그 소년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었지만. 소년을 알고 있는 우리 어른들은 모두 죄바카라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입버릇처럼. 우리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어른이 죄죠라고 말하고는 했다.
어른이라는 이름의 죄인들이.
아이의 저울 위에 불행이라는 추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처럼 보였기에.
어른의 부끄러움은 같은 어른의 몫인 것 같았다.
결국 상담 내내 나는 소년과 다른 일들을 했다.
지금 소년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하여 담당 선생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고, 이를 학교 측에서도 귀 기울여준 덕분이었다.
소년과 나는 상담 시간에 밥을 먹었고, 영화를 봤고, 어떨 때는 낮잠 시간을 갖기도 했다.
시간을 귀하게 쓰고 싶어 하는 소년을 위해. 아이의 밥 먹는 시간을 아껴주었고. 또래 친구들이 모두 보았다는 유명한 영화도 함께 보았다. 동생 학교 숙제를 도와주느라, 아버지 병간호 하느라, 일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소년을 위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야 하니까.
그렇게 겨울 방학과 함께 소년과의 상담은 종결되었고. 학교 측에서는 소년의 상담이 무척 성공적이었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에 전해 들을 수 있었던 다정한 소식. 비록 소년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뿐이어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학생을 연계해 주며, 방문 상담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내가 직접 학교에 가야 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개학하자마자 학교에 가게 된 상황. 여기가 소년이 다니던 학교였구나, 그렇게 혼자 추억하며 상담실에 들어서려던 순간. 나보다 먼저 문을 벌컥 열고 나오는 남학생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서로 죄송합니다, 하고 얼굴을 봤는데. 나만한 키의 학생과 눈높이를 마주했다.
초면인 듯 하지만 초면이 아닌 얼굴. 분명 내가 알고 있던 그의 키는 나의 코 언저리 밖에 오지 않았었는데. 십 센티는 넘게 훌쩍 커버린 듯 보이는 키와 입가에 잔잔한 수염 자국까지.
소년이었다. 놀랍도록 건강해 보였다.
너무 놀란 내가 그를 알아보자마자 어 어 하는 사이. 자신도 나를 알아본 듯.
개구쟁이처럼 히히 웃어 보인 소년은 다시 내게 죄송합니다 크게 외친 후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남겨둔 채. 언제나처럼 나와의 상담이 끝나면 황급히 사라졌듯이.
상담 중에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선.
그 해 처음 만난 햇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