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걷지 못하는 스무 살들
"전공 필수 과목 이수를 행정실에서 안 알려줘서 졸업을 못 하게 생겼잖아요. 내용증명 보내고 소송할 겁니다."
최근 조선일보에 보도된 대학가의 믿기 힘든 풍경입니다. 이 황당한 민원을 제기한 것은 스무 살 대학생 본인이 아닌 다름 아닌 '학부모'였습니다.
초중고교를 넘어 이제는 대학 교정까지 '헬리콥터 부모(자녀 주변을 맴돌며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상륙했습니다.
교수들의 하소연은 한숨을 넘어 실소를 자아냅니다. "우리 아이가 숫기가 없으니 출석 부를 때 특별히 신경 써달라", 심지어 "교수님 연구실 석사 과정에 진학하려면 부모인 제가 뭘 준비해야 하느냐"며 직접 전화를 걸어옵니다.
오죽하면 일부 대학 교수들은 강의계획서에 '부모가 성적 항의 전화를 하면 F학점을 주겠다'는 경고문까지 써 붙이고 나섰을까요.
내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실패 없이 탄탄대로만 걷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 앞의 돌부리를 부모가 모두 앞장서서 치워주면, 아이는 영원히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삶의 작은 문제 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부모 등 뒤로 숨는 '무늬만 어른'인 대학생들. 이들은 부모가 대신 항의해 주고, 부모가 대신 진로를 설계해 주는 것에 뼛속 깊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대신, 끝없이 어른(부모)의 인정과 개입에 의존하는 '인정 중독'과 '학습된 무기력'의 덫에 빠진 것입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자아가 생기기 시작할 때 가장 본능적으로 외치는 메시지는 "내가 할 거야!"입니다. 서툰 손짓으로 신발 끈을 묶고, 우유를 질절 흘려가며 컵에 따르는 그 모든 답답한 과정이 곧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위대한 의식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어른은 닥친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아이가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불안한 마음에 섣불리 안아 올리는 대신 아이 스스로 무릎의 흙을 털고 일어날 때까지 단단하게 믿고 기다려주는 어른입니다.
"네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보고 도와줄게"라는 무언의 신호야말로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지지입니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뒤에 숨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대신해 주는 사랑'을 멈춰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