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의 민주화

임윤찬이 내 곁으로 왔다

by제이

ㅡ70년대.
이웃 도시 진해에 일본식 목조건물의 음악감상실 '흑백'이 있었다.(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됨)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깥에는 봄날의 분홍빛 벚꽃들이 분분 휘날리고 있는데 실내는 어둑하다.
여기저기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감상을 하고 있다.
화창한 바깥, 어두운 실내, 불같은 젊음 그리고 음악의 물결.
색 빛 음이 어우르진 내 청춘의 한 페이지.

어릴 때 우리 집에 소형 냉장고 크기의 전축이 있었다.
아버지는 일본 노래나 이미자 노래 등의 LP 판으로 노래를 들으셨다.
좁은 집안 탓인지 언젠가 그 전축은 없어졌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던 70년대는 포터블 전축으로 크리프 리처드 등의 음악을 들었다.



여학교 시절까지 내가 살았던 그 도시에 FM 송출 방송국이 없기도 했고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되지 않았다.

대학시절,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학교 동창이 어느 날 역시 음악 전공인 남자친구 집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 감상회에 나를 초대했다.
그날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SONY
카세트 녹음기를 가져가 그 귀한 클래식 음악을 녹음해 와 두고두고 들었다.
물론 음질은 별로였지만.
그 친구는 가끔 음악회에 갔다.
나는 결혼하고서 한참 후에야 음악회에 가보게 되었다.

음악회는 선택된 사람만 가는 곳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그래도 좀 아는 사람.
경제적 여유가 되는 사람.
유명 음악인이 나오고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기십만 원의 티켓값.
무엇보다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시간을 내어 어느 곳으로 직접 가야 한다.
여유가 되는 선택된 자의 특권.
물론 다양한 FM 방송국이 생겼고 라디오를 켜면 종일 나오긴 한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바로 그 가수의 그 노래를 들으려면 싸지 않은 음반을 사거나 음악회에 가야 한다.
음악 CD로 벽면을 가득 채운 지인의 아파트, 부러웠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특권층만 누리던 음악 감상.
그런데 이젠, 스트리밍 서비스와 스마트폰 이나 컴퓨터등의 하드웨어가 보편화되면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주권을 가지는 음악 감상의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없이 접속이 가능하다.

시공간의 벽도 없다.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던 Glen Campbell의 노래 'Time'도 반세기 만에 되찾아들을 수도 있다.
노래뿐인가? 직관은 아니더라도 연주회 영상도 볼 수 있다.

최근 빈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그의 주옥같은 연주를 스마트폰에서 손 몇 번 톡톡하면 들을 수 있는 황홀한 세상.
공간 시간 신분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무료로 이런 귀한 음악가를 골라 내 곁에 둘 수 있는 이 민주주의라니...
그의 연주 영상 밑의 기나긴 리뷰는 숱한 감사와 감격과 감동의 간증 퍼레이드.
이 청년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실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넘쳐나게 되었다.
바로 이 스마트폰 덕분.

음악은
우리를 위로하고 즐겁게 하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때로는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려준다.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며 통증을 감소시키며 정신노동의 피로를 경감시킨다고 한다.
물론 직접 음악을 하면 더 좋겠지만 듣기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귀명창'
판소리를 직접 부르지 못해도 판소리를 정확히 알아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명창에 버금가는 청중이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그냥 스트리밍으로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어디에 가입하면 신세계가 펼쳐진단다. 한 곡의 지휘자별 버전, 다른 오케스트라별 버전을 비교하여 들을 수 있단다.
누구는 어느 기계를 설치해 들으면 더 멋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역부족이고
지금으로도 나는 만족스럽다.
집에서 음악 들을 때 가끔 스테인리스 볼에 스마트폰을 넣는다. 음이 더 풍부해지는 느낌.

한국 여성 기대수명은 24년 기준 86.6세 란다.
통계대로 하면 나에게 13년의 시간만 남아있다.
'더 오래 살고 싶다'
최근 임윤찬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문득 든 생각.
이런 음악들을 오래오래 듣고 싶다.
음악감상의 민주화시대를 이끈 스마트폰 덕분으로 생긴 나의 생의 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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