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릴 뻔한 보물들
720만 원. 레이디 디올백 리미티드에디션-
*리미티드 에디션: 한정판 제품.
한시적이라 제때 아니면 구입하기 힘든 명품.
한때, 전세로 살았던 동네.
이른바 타운하우스.
2~3층 높이의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단지 안에는 철 따라 갖은 꽃들이 피었다.
봄의 초입에는 목련이 봉오리를 맺고
이어 개나리 철쭉 벚나무로 꽃 대궐을 이루었다.
가을에는 도로변 나지막한 담 안팎으로 낙엽이 알록달록 카펫을 깔았다.
미처 치우지 못한 낙엽 위로 쌓인 눈송이들.
밤 산바카라을 나서면 얼핏 얼핏 보이는 나지막한 집집의 거실의 불빛이 따뜻했다.
그곳에서 이사 나가고 시간이 꽤 흘렀다.
그곳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언뜻 들었다.
얼마 전 그곳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예전의 촌스럽지만, 서양의 어느 마을 같은, 자그마한 관목들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그곳은 사라졌다!
높은 위용을 자랑하며 성채 같은 아파트들이 빽빽이 떡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고가의 아파트가 되었다.
어차피 전세로 살았기에 그곳의 가격의 변동에 나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예전이 좋았지...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그래, 예전 그 집이랑 지금 이 아파트 중 어느 게 더 좋아?
난 예전 그 집이 더 좋은데.
그러니 나에게는 예전 그 집이 지금 이 집보다 가격이 더 높구나.
이 집도 고가인데 더 비싸면 얼마가 되는가? 언감생심.
아아 나는 얼마나 귀한 집을 누렸는가?
예전 한 채 집이 재건축되면서 두어 채가 되었으니 사실 나는 두어 채의 집을 누린 셈이고.
아차 했으면 몰랐을 사실.
아차 했으면 놓쳤을 복.
그 때니까 가능했던 한시적 복.
Limited edition!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국제박람회 전시장과 놀이동산이 있었다.
한때, 그곳은 전국에서 모여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놀이동산 뒤쪽 담 건너, 작은 도로 맞은편 산자락 아래에 수영장이 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수영장에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수영장 밖 인적이 뜸한 한적한 도로에는 오래된 플러터너스 나무들로 낮에도 어둑한 그늘을 이루었다.
바로 곁에 대로가 있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잘 모르고 잘 이용 안 한다.
수영장 이용객과 이곳을 잘 아는 이들만 이곳을 지나친다.
곁의 놀이동산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음악소리.
롤러코스터 타는 이들의 즐거운 고함소리가 간간이 담 너머 들렸다.
놀이공원과 수영장 이용객이 점점 줄어들면서 그 플러터너스 가로수길 이용자도 뜸해졌다.
오가는 이 별로 없는 아는 사람만 아는 길.
나는 그 근처를 지날 때 가끔 일부러 그 샛길을 이용했다.
차로 5분 정도 이어지는 그 길에 접어들 때마다 별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나만이 아는 비밀의 길 같은.
어느 안개 낀 날의 드라이브는 꿈같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그 근처를 지나가다 그 샛길로 통과하려고 진입로로 들어서니 그 우람하던 가로수들이 반 이상 베어지고 없었다!
한낮에도 어둑하던 그 길이 햇볕 아래 휑했다.
베고 남은 밑동에서 다시 자라는 가녀린 줄기와 싹들이 보기에 애처로웠다.
폐가 같았던 놀이공원과 박람회장은 다 철거되고 그 자리에 각종 공공기관과 화려한 백화점이 들어섰다.
그곳 큰 길가에 있던 세쿼이아 가로수길.
끝 간 데 없이 높이 열을 지어, 눈이라도 오면 성탄 카드 그림 같았던 그곳.
차로 왕복 한 시간의 아들이 다니던 주간보호기관.
매일 아들을 거기로 데려가고 올 때 거치는 그 길.
나는 그 길을 '감사의 길'로 이름 지었다.
그 아름다운 길에 들어서면서 감사찬양을 흥얼거리곤 했는데.
어느 날 그 '감사의 길'도 사라졌다.
아니, 수십 그루의 세콰이어 나무가 사라졌다.
각종 정부기관들이 들어서고 길가에는 막대기 같은 어린 나무들이 오종종 꽂혀있다.
봄이 오면 탄성이 나오는 끝없는 붉은 철쭉 길과 순백과 자색의 목련나무들도 이런저런 공사와 설치로 야금야금 없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국제회의라도 열리면,
수백 개의 꽃 화분이 길가에 한시적으로 설치된다.
공무원들이 알아서 하는 일 일 터 지.
자본주의 논리에 합당하게 나라가 하는 일일 터 지.
어쩐지 섭섭한 마음을 애써 달랜다.
그리고 생각한다.
지금 그곳을 스쳐가는 사람은 상상도 못 할 복을 우리는 누렸다네.
놀이공원, 수영장, 플러터나스, 세쿼이아 가로수길들, 꿈같은 꽃길들..
제 때 사지 않으면 제 값으로 사기 힘든 수백만 원짜리 디올 한정판 가방만 명품이 아니다.
내 마음 서랍 속에 있는 추억이라는 명품.
그때 아니면 다시 누리기 불가능한 추억도 명품이다.
생각해보니 인생의 계절마다 나를 스쳐간, 스쳐가고 있는 귀한 분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시적 은혜.
아차 하면 놓쳤을
Limited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