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온도
이 지방에 아직 기독교 방송국도 없던 80년대 중반,
서울의 꽤 큰 교회를 다니다가 지방으로 이사 왔다.
물론 여기서도 훌륭한 목사님을 만났지만 예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그리워 설교 테이프 주문을 한다.
한 달의 주일 설교 테이프 4~5개를 그다음 달에 우편으로 받는다.
받은 테이프를 듣고 듣는다.
그렇게 모았던 테이프가 라면박스 한가득.
하나씩 사 모은 찬송 테이프가 이삼십 개.
전국구 유명 목사님이 우리 집에서 꽤 떨어진 동네의 교회 부흥회 인도 차 오신다는 소식.
그날, 버스를 타고 원정 예배를 떠났다.
은혜도 받고 귀한 지난 설교 테이프도 구매해 들었다.
90년대 잠깐 체류했던 미국.
귀국하기 전 한동안 나는 테이프 복사하느라 바빴다.
한국 성가 테이프가 귀한 그곳, 정들었던 교우들에게 복사한 찬송 테이프 선물하느라.
귀한 선물이 되었다.
출판사 두란노에 갖가지 테이프를 주문했다.
성경공부 시리즈, 영성 시리즈, 부흥회 테이프들...
하나씩 아껴 듣는다.
그렇게 사서 모은 테이프로 서가 한 칸이 채워졌다.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면서 멀쩡한 바이블 테이프 세트, 찬송가 테이프 세트, 복음성가 테이프들... 몽땅 다 처분했다.
아깝지만 섭섭하지만 이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
스마트폰 하나면 된다.
성경 모든 구절이 여러 다양한 버전으로,
찬송가 복음성가 모든 곡들이 악기를 달리하며 가수들을 달리하며 들을 수 있다.
원정 가지 않아도 구입하지 않아도 목사님들의 예전, 최근 설교들이 짠! 나타난다.
스마트폰 배터리만 남아 있으면.
재야고수들의 QT까지.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달랑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세상.
차고 넘친다.
그런데
어쩐지 차가워졌다.
예리해졌다.
새벽, 갈탄으로 난방하느라 매캐하고 차가운 교회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 영성이 따뜻한 카펫 위에서 졸음이 온다.
말씀 듣다가 찬송 부르다가 눈물이,
기도 시간에 여기저기서 흐느껴 우는소리.
시간 나면 기도원에 올라갔던 일도 추억으로 남았다.
세상도 나도 둔해졌다.
특히 코로나로 랜선 예배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전국 저명한 목사님들의 화려한 설교에 접하면서 가난한 마음이 부자가 되고 귀가 넓어졌다.
귀명창이 되었다.
지식은 넘치나 은혜는 말라간다.
은혜로운 신앙 매체가 넘치는 이 세상.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그런데 내 마음의 은혜는 예전만 하지 못하는 건 풍요 속의 빈곤.
매체의 드넓은 바다에서 은혜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어릴 적 가정예배드릴 때면 이런저런 딴짓하던 손자.
중학생이 되었다.
며칠 전 '차별금지법 반대'피켓을 들고 광화문광장 연합예배에 나타나셨네.
어제는 교회 중등부 '12시간 연속기도회'에 참석해 찬양하고 계시네.
비록 명절 때 할머니집에 오자마자 방 속으로 숨어들어 지 엄마가 막아놓은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에 빠지지만.
콩나물 키우기.
물 주면 바로 쑤욱 빠져버린다.
그래도 콩나물은 시간시간 자란다.
세상은 만만찮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더 만만찮게 신앙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드나드는 우리를 지켜 주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