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카드가 좋아
큰 문구점이나 외국 나갔다가 슈퍼 한구석에 있는 카드 매장에 들를 기회 있으면 카드들을 산다.
생일카드, 감사카드. 축하카드...
60년대.
우리 집에는 교사인 아버지가 쓰시는 등사기가 있었다.
파라핀이 코팅된 얇은 모눈종이에 철필로 글을 써서 프린트기에 붙여 잉크롤러로 굴리면 용지에 인쇄가 되는 기구.
< 가리방 . 이성복제공 >
60년대, 어느 성탄절즈음.
그 당시 고등학생이던 친척 오빠가 우리 집에 와 그 등사기로 수십 장의 성탄 카드 원판을 인쇄해 갔다.
그것에다 색칠을 하고 글을 쓰면 성탄 카드가 된다.
중학생이던 나는 그런 대량생산물 보다 한 친구에게 하나씩 만드는 순수 수제카드.
일 년간 꽃잎, 낙엽 등을 바카라 속에 넣어 말렸다가 부재료로 붙여 쓴다.
금박 가루도 뿌린다.
친구들을 한 명씩 생각하며 밤늦도록 성탄 카드를 만들던 추웠던 그 겨울밤.
시판 카드가 많지도 않고 비쌌던 그 시절.
해마다 판매되는 결핵퇴치를 위한 '성탄씰도 붙였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예쁜 카드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결혼을 하고 주거지를 국내 국외로 옮기면서 카드 보낼 곳도 여전히 생겼다.
친구뿐 아니라 부모님, 친척, 교회 지인들...
우체국에 가서 성탄 카드를 한 묶음 보내면 한 해가 갔다.
딸이 결혼하니 카드 보낼 곳에 친구와 친척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위와 손주들의 생일카드, 축하카드가 자리 잡았다.
카드에 성경의 축복 말씀을 적고 적당한 현금 동봉하여 등기로 보낸다.
카드도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날짜도 미리 신경 써야 생일, 졸업식 당일 도착한다.
바쁜 딸은 자기네 네 식구 축하일을 이렇게 카드로 축하하는 엄마를 흉내 내지 못한다.
그저 고마워만 할 따름.
언제 카드 사서 언제 우체국 가나?
바쁜 이 시대에.
그래도 손주네 방 바카라상에 할머니가 접때 보낸 성경 구절 쓰인 카드가 떠억 자리 잡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
할머니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이 리츄얼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네도 문 앞에 너네 이름으로 배달되는 이 아름다운 종이카드가 좋지?
장애인 아들은 마흔이 넘어도 자립이 안 되나 나라가 좋아져 어딘가에 매일 나간다.
누군가가 도와준다.
나는 영원한 학부형.
거진 사십 년간 이 고마우신 분들에게도 카드는 유용하다.
스승의 날 감사카드.
부모님도 소천하시고 친구들도 멀어지니 이젠 성탄 카드도 생일카드 보낼 곳도 제한되었다.
인터넷의 놀라운 시대가 왔다!
카드 사는 일도, 주소 알아내고 우체국 가서 부치는 일도 필요 없다.
엔간한 곳은 카톡으로 생일 축하.
필요하면 네이버로 카드 그리고 송금, 선물 발송.
손가락 몇 번 툭툭 치면 끝.
어찌 좀...
사는 게 편리해졌으나
각박해지고 메말라진 듯하는 건 내 나이 탓인가?
그러나 난 예전이 그립다.
성탄 카드 만들던 그 추웠던 겨울밤이.
우편함에 들어있는 반가운 카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