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플레이. 역할극

잠시 쓸 나의 마스크.

by제이

예전, 서른쯤 되었을 때 뒤늦게 사춘기가 온 아들.
엄마 말 안 듣는다.
기분이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
갑자기 화가 나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버럭 고함을 지르면 엄마 간이 떨어질 판이다.
어느 날 엄마가 아들에게 말했다.
"애야, 내가 힘들어. 엄마 그만하고 네 아들이 되련다. 이제 네가 엄마 해라.
엄마 엄마, 밥 주세요, 과자 주세요.."
어처구니 없어진 아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엄마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헤헤거린다...
세상 금쪽같은 자녀들이지만 엄마 노릇하기 어디 쉽나?
더욱이 평생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는 부족한 아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생애 동안 이 역할을 주셨다. role play.
나의 태어난 성격이 이 역에 맞는지 아니면 이 역에 맞게 성격이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태어났을 때는 기가 막혔지만 이젠 보험도 되는 예쁜 강아지 한 마리 키우듯 나름 행복하게 지낸다.

어느 지인이 언젠가부터 옷차림이 달라지셨고 외모도 좋아지셨다.
알고 보니 어느 곳에 바카라임자로 취업이 되신 거다.

평범하게 지내던 분이 어떤 다른 역할을 맡으면, 예전의 그분에게 몰랐던 숨겨진 역량이 나타나 놀랄 때가 있고 그분의 연약함이 더욱 드러나 안타까울 때도 있다.

영화 'Little big hero'
오래전 개봉된 더스틴 호프만 주연 영화.
무어 하나 성실하지 못하고 급기야 이혼 직전까지 와있는 그.
어느 날, 비행기가 도시로 추락하여 불길에 흽싸인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그는 불길을 뚫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간다.
그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사람들을 구하게 되었다.
희생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조하게 된 게 아니라 본래 그가 살아왔던 대로 무어 하나 훔치려고 들어갔다가 그렇게 된 것.
그런데 추락한 그 비행기 안에 있던 한 기자가 불길 속에서 용감히 사람을 나르는 그를 사진 찍었다.
그는 이기적인 이 시대에 영웅이 되어버렸다.
이런저런 소동으로 역시 별 볼 일없는 한 친구가 주인공을 대신하여 역할을 이어받았다.
군중들의 존중과 환호, 그리고 기대 속에 그 친구는 좀도둑에서 성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영웅'은 어린이 재활병원도 찾아가 기도해 준다.
기적이 일어난다.
기도받은 아이가 정말 나아버렸다.
자리가 성인을 만들고 대중은 그 성인의 힘을 믿는다.





사람들은 영웅을 만들고 그 영웅은 환호하는 대중들의 기대를 지키기 위해 본의 아니게 또 다른 마스크를 써야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일반적으로 나이, 연륜이 들수록 높은 보직을 맡게 된다.
모두가 존경하듯 모신다.
회식자리에서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을 해도, 뻔한 이야기를 해도 다들 놀라며(놀라는 척) 재미있어한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직을 떠나고, 그 위치의 옷을 벗을 때 나는 누구인가?
그건 자리의 힘이었다.

우리는 잠시 이 땅에 살면서
남자로 여자로
잘 생긴 이로 못생긴 이로
부자로 가난한 자로
장애자로 비장애자의 옷을 입고 그 역할을 맡아 살고 있다.
언젠가, 연극 같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난다.
창조자이신 그분이 기쁜 뜻을 가지고 주신 우리의 역할.
다양한 육신의 옷을 벗고 그 역할도 끝내고 저 영원한 나라로 갔을 때 그분을 만날 터다.
모든 이에게는 죽음이 있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했다.
그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의 역이 무엇이든지
내 연극의 감독이신 그분을 믿고 바라며 견디는 것.
그분을 사랑하는 것.
하긴, 영원한 사랑이 없는 이 땅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유일한 그분이 믿고 맡기신 이 역할이니...

작가의 이전글이미 지불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