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활동의 기억
1976년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어디에서 정보를 들었는지 오늘부터 공부방에 다니라 하셨다. 그동안 빈 자리가 없어서 기다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는 선생님이랑 미리 얘기를 끝냈는지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가셨다. 숫기도 없는 애가 혼자서 낯선 집에 들어선다.
- 응, 너구나?
목소리가 큰 선생님 C가 활기차게 맞아준다. 한눈에도 기가 세 보이는 인상이다. 조금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공부방은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문간방이다. 방에는 디귿자 모양으로 앉은뱅이바카라상이 배치되어 있다. 아이들이 많을 땐 열 명도 넘게 둘러앉을 수 있다.
생전 처음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미리 공부하는 경험을 했다. 학교 선생님보다 더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쳐 줘서 놀라웠다. 소문처럼 아마도 C는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던 것 같다. 적절하게 퀴즈를 내서 아이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곤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이 공부방은 특이하게도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다. 주로 토요일에 따로 나갔던 것 같다.
다 함께 요리하기. 기억나는 요리는 감자 크로켓. 잔칫날처럼 마당에 곤로가 나와 있고 튀김팬도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마루에 앉아 으깬 감자를 동그랗게 만들면 된다고 했다. C의 대학생 남동생이 시범을 보였다. 그때 ‘숙달된 조교’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뭐든 튀기면 다 맛있다지만 내가 좋아하는 감자가 이런 맛이 나는 게 신기했다. 엄마가 해주는 감자 요리라야 감잣국이나 감자조림, 감자볶음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색다른 체험하기. 우린 당시 인기 있었던 KBS <누가 누가 잘하나>에 도전하기로 했다. 노래를 잘하건 못하건 그냥 모두들 예심에 나갔다. 당시 영등포에 살았기에 여의도 KBS까지는 멀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다른 노래를 준비했는데 그 노래를 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연습도 안 한 <동무생각>으로 바꿨다. 예심이라는 게 그렇듯이 한 소절만 들어보고 다음! 이렇게 넘어가는데, 나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까지 불렀다. 어, 통과하는 건가 싶었는데 다음! 탈락이었다. 친구들 모두 그야말로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둔 도전이었다.
작곡해 보기. “에이, 어려워요, 안 해요!” 공부방에선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C의 성격을 알기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어머니가 준비해 준 찐 고구마 간식도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진지하게 음악 공바카라에 음표를 그려 나갔다. 잠시 후 나도 “솔~미도 시도레도 파파라라 솔~미~” 멜로디를 흥얼거렸고 “간밤에 이슬비가 소리 없이 오네”라는 가삿말도 붙였다. 어디서 들어본 듯했지만 아무튼 자작곡을 만들어 봤다는 뿌듯함이 좋았다.
단체로 영화 보기. 당시 선풍을 일으킨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봤던 것 같다. 제목만 봐도 눈물을 쏙 뺄 만한 영화인지라 우린 상영관을 나오면서 선생님께 얼마나 울었는지 미워진 얼굴을 보여주느라 바빴다. C가 어이구 많이 울었구나? 넌 괜찮은 것 같은데? 안 슬펐어?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며 선생님을 둘러쌌다.
선생님과 가까워진 우리는 진짜 궁금한 이야기도 물었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한 사람이 계속해요?” 태어나서부터 죽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때 C의 난처해하는 표정과, 어디 가서 그런 얘기하면 안 된다고 입단속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방 친구들과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같이 뛰어놀았다. 주로 애들이 노는 걸 구경하거나 깍두기나 했던 내가 함께 노는 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골목길에서 놀 때면 꼭 딴 데 가서 놀라고 야단치는 어른들이 있다. 당시엔 변변한 공원도 없어서 놀 데도 없는데 말이다. 우린 어른들 등쌀에 밀려날 때마다, 나중에 저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속 안의 억울함을 삼키며 다짐하곤 했다.
긴긴 초등학교 6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당시 공부방이 그렇듯,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떠나야 한다. 나도 친구 한 명이랑 같이 하는 영어 개인 과외로 옮겨 갔다. 과외 선생님은 조용조용하고 예쁘고 젊은 대학생 언니였다. 선생님이랑 알파벳도 배우고 기초 영어도 배웠지만 좀처럼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C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그리웠다. 가끔 C 동생이 노처녀라고 놀리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C는 내게 완벽한 선생님이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공부방에서 배웠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자신 있는 아이로 성장했다.
가끔 생각한다. C가 다 함께 10년 후에 만나자고 한 약속은 과연 몇 사람이나 지켰을까. 1987년 12월 31일 낮 12시,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엔 과연 누가 나타났을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