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문턱에서
몇 달 전, 조용했던 대학동창모임 단체카톡방에서 연달아 알림이 떴다. 한 친구가 소천했다는 부고였다. 졸업한 후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터라, 내게 그 친구는 20대 초반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간간이 들었는데, 결국…. 누군가 비교적 최근의 사진을 올려줬는데 그 시절 그 모습이 여전하다. 짧지 않은 투병 기간 동안 평범한 일상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우리는 친구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기를, 부디 평안한 안식을 얻기를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60대에 접어들고 보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백세시대엔 젊디 젊은 나이지만,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나이인지도 모른다.
새치라고 우겼던 흰머리는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할 땐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는데, 백수가 된 다음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우쭐할 때도 있지만, 내 몸이 조금씩 나이 들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최근 보건소에서 두 가지 검사를 받고 나서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둘 다 남편 J와 함께 받았는데 내 결과가 더 안 좋아서였다.
하나는 골밀도 검사. 발뒤꿈치 뼈 상태를 보는 거라는데 J는 골감소 상태, 나는 골다공증 위험을 살짝 넘는 수치가 나왔다. 작년에 빙판길에서 넘어졌을 때 손목이 골절된 게 그저 운이 나빠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뼈 상태가 안 좋았던 거였나. 출산 경험이 있고 폐경기를 지난 여성들의 골밀도가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거기에 내가 포함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치매혈액 검사. 혈액 내에 베타아밀로이드 응집화 정도를 측정해 향후 10~15년 후의 치매 발병 위험도를 평가하는 검사라 한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 뇌엔 베타아밀로이드가 비정상적으로 쌓여 있기 때문에 그 수치를 미리 알아보는 거란다. 엄마가 다니던 병원 주치의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엄마 같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엔 불필요한 단백질이 덮여 있어서 그렇다고.
혈액 검사 전에 받은 문진은 뭘 이런 걸 묻나 싶을 정도로 간단하고 쉬운 내용이었고 당초 혈액검사를 받은 이유도 사실 B 때문이었는데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둘 다 ‘경계’에 포함되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난 ‘고위험’에 가까운 경계였다. 헉!
언젠가 엄마 이야기를 쓴 내 글에 ‘치매도 유전이래요. 저희 엄마도 치매셨는데 저도 위험 진단 나왔어요.’라는 댓글이 달렸는데 갑자기 그 문장이 떠올랐다. 꼭 그렇진 않다는 이론도 많은데 이럴 땐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뭐가 이리 위험이고 경계인가. 늙으면 늘어난다는 걱정이 몇 가지 얹어지니 쫄보의 마음이 더 위축됐다. ‘경계군’에 해당한다고 시청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정보 문자가 주기적으로 날아온다. 괜한 검사는 받아가지고 마음만 심란하게….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혈압/혈당/콜레스테롤 관리, 규칙적인 운동, 금연, 과음 피하기, 충분한 수면, 슬롯/인지 활동 등을 해야 한다는데 내가 부족한 건 ‘충분한 수면’뿐이다. 하루 7시간 이상 충분히 깊이 자야 하는데(이때 베타아밀로이드가 제거되기 때문에 ‘뇌청소’라고 표현한다) 새벽 수영을 시작한 뒤로 수면 시간이 많이 줄었다. 잠드는 시각은 많이 못 당겼는데 새벽에 일어나야 했으니 6시간도 안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잘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생각해 보니 치매에 걸리셨던 시어머니와 엄마 모두 수면의 질이 좋지 않으셨다. 시어머니는 워낙 오래전부터 불면증이 있으셔서 수면제 처방을 받거나 와인 한 잔을 드시고 주무시곤 했다. 엄마는 이른 저녁에 주무시곤 한밤중에 일어나 다시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창창한 세월을 쓸데없는 걱정으로 허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있을까. 늙어가는 문턱에서 생각한다.
몸 이곳저곳에서 가만 천천히, 조심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 이런 신호를 보내면 따뜻한 위로를 보내야지.
- 애썼어, 그동안 몸 생각 하지 않고 달려왔잖아. 미안해 좀 봐줘, 이제 천천히 맞춰 갈게. 좋은 생각, 건강한 음식, 내 몸에 맞는 운동으로 채워볼게. 물론 잠도 잘 잘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