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유감
부쩍 얼굴 잡티가 늘었다. 피부과 시술을 받아야 하나. 그러다가 백수가 무슨, 빠르게 생각을 접는다. 게다가 20년 전쯤에 레이저시술 받은 부분이 되레 하얗게 변한 것 같아 꺼려진다. 간단한 거라길래 집 근처 비뇨기과(진료과목에 피부과를 병기했던)에서 했는데 피부과 전문의가 아니어서 이렇게 된 건가. 알 수도 없는 이유를 자꾸만 찾지만 돌이킬 수 없다.
사실 피부에 관한 한 할 말이 없다.
까무잡잡한 아이들의 피부는 대체로 좋다. 나 역시 그랬다. 어렸을 적 막내 동생이 손톱으로 할퀸 상처 정도만 있을 뿐, 사춘기 때도 여드름 하나 나지 않았다.
내가 고역스러운 계절은 여름. 피부가 하얀 친구들은 햇빛에서 오래 뛰어놀거나 수영장에 다녀오면 빨개지는데 나는 놀랍게도 바로 새까매진다. 오죽하면 엄마가 학교 갈 때 양산을 쓰라고 들려줬을까. 아이 걸음으로 족히 20~30분 걸리는 등하굣길이라 겨울 못지않게 여름 한철도 힘들었다. 엄마가 쓰라고 하니 몇 번 가지고 다녔을 테지만, 어린애가 양산 쓰고 다니는 게 얼마나 우스웠을까. 어차피 까매지는 거,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니 친구들의 화장은 나날이 과감해졌다. 아이섀도 팔레트에 있는 색깔을 테스트하듯 매일 다르게 화장하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남들한테 우리 앤 수수하다고 좋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게으른 탓도 있다. 교양 강좌에서 <여성학> 등을 들은 다음엔 화장을 하지 않는 게 나름 소신이 됐다. ‘내가 왜?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어쩌다 미팅하러 가면, 화장 안 하고 나오는 여자는 성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편견이 싫었다.
대학교 4학년, 개별 졸업 사진을 찍는 날. 우리 과 애들 중엔 유명한 미장원에 가서 풀메이크업을 받고 머리 손질을 했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마담뚜’(와, 이런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 보니 나 진짜 옛날 사람이다)가 졸업 앨범을 보고 중매를 한다나 어쩐다나. 그러니까 무조건 사진이 잘 나와야 한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평소와 다름없이 스킨로션만 바른 채 사진 스튜디오에 갔다. 나중에 앨범을 받아 보니 확실히 힘을 준 아이들은 달라 보였다. 그때 앨범이 흑백이라 얼마나 다행이던지. 난 뭐 그래도 화장 하나도 안 한 것치곤 괜찮네, 이런 자뻑으로 위안을 삼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꾸미지 않아도 예쁜 시절,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린 스물두 살 때였다.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서도 다르지 않았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시절, 디자인실 동기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나랑 같은 시각에 출근하는데 얼마나 부지런한지 완벽한 화장에 스타일리시한 의상까지, 매일 감탄했다. 난 그때도 맨 얼굴에 대충 입고 다녔다. 취재할 때 덤벙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오늘은 인터뷰할 때 꼭 녹음기 챙겨야 돼, 이런 다짐을 하던 나날이었다.
이랬던 내가 결혼하는 날. 전문 예식장이 아니라서 ○○회관 전속 미용실에서 신부 화장을 받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화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투덜대는데, 나는 분장 수준의 화장이 낯설어서 그냥 그들이 해주는 대로 맡겼다. 문제는 전혀 다른 내 모습으로 연출했다는 것. 대학 친구들이 신부 대기실 두 곳을 모두 들여다봤는데 내가 없었단다. 내가 먼저 알아보고 친구 이름을 불러줘서 그제야 알아봤다나. 아무튼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의 결혼식 풍경이 그러했다.
출산을 앞두고 온라인 게임을 그만뒀다. 그리고 긴 육아. 화장이란 걸 하기 시작한 건, 마흔이 넘어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선크림에 비비크림, 컨실러로 잡티 가리기. 그리고 아이브로우에 립글로스. 이 정도면 나로서는 최선이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화장 좀 해~ 라고 말한다. 나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아이라인을 그리는 건, 눈이 워낙 예민해서 눈물이 나오는 통에 못 하고, 색조화장은 굳이~ 싶으니 그럴 수밖에. 눈썹은 숱이 별로 없어서 그려야 하는데, 이것도 기술인지라 여전히 서툴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왜 눈썹은 잘 못 그리냐고 딸아이가 가끔 핀잔을 주는데 그게 늘지 않는다. 주변에선 편하게 눈썹 문신을 하라는데 그건 또 싫다. 늘 똑같은 눈썹 모양이라니, 재미없어서다.
가끔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우리 어머니는 골프를 그렇게 좋아하셨으면서도 피부 타는 건 극도로 싫어하셨다. 우리 차를 탈 때도 햇빛이 덜 드는 자리가 당신 자리였다.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놀러 갈 때도 선캡에 선글라스에 장우산, 그게 없으면 점퍼를 넓게 펴서 뒤집어쓰고 다니셨다. 그 덕분인지 연세에 비해 피부가 너무 좋으셨다. 난 또 그게 너무 유난스럽다 싶어 어머니와 있을 땐 신경 쓰지 않는 척 그 햇볕을 다 맞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객기였다.
수영장 친구 R은 피부가 진짜 좋다. 세상에, 그 나이에 잡티 하나 없다니. 그 친구는 키 큰 나를 부러워하는데 나는 그가 부럽다. 같이 강습을 받던 때, 어쩌다 턴하는 사람과 출발하려던 R이 엉키면서 R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손톱이 스쳤나 보다. 다음날, R이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왔길래 많이 다쳤냐니까 그렇진 않은데 혹시 상처 남을까 봐 피부과에 다녀왔단다. 그거였네, 이 친구의 좋은 피부 비결이. 우리 같으면 후시딘 같은 연고나 발랐을 텐데 작은 생채기 하나도 그냥 두지 않고 잘 관리한 덕분이었던 거야.
내 경험 때문에 내 동생한테도 얼굴에 생긴 검버섯 같은 잡티 그냥 두지 말고 빨리 피부과에 가보라고 했는데, 얘도 내 과다. 그렇게 버티더니 큰 아이 결혼식을 앞두고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피부과를 찾았다. 피부과 전문의 왈, 계속 관리하실 거 아니면 하지 마세요, 그랬다나. 나처럼 레이저로 제거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단다. 몇 년 다니면 돈이 얼마라길래 내가 강력히 조언했다. 네가 돈 버는데 이젠 너를 위해 써라, 아까워하지 마라. 큰 딸 시집보낸 다음에도 동생은 계속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고 있다. 작은딸 결혼식 때까지 한다나. 잘한 일이다. 어쩌면 동생에겐 그렇게 피부과에 머무는 시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는 그 시간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화장대 거울을 보며 매일 생각한다. 이건 스트레스받았을 때 마구 생겼던 뾰루지 자국. 피부과에 가야 했는데 굳은 딱지를 그냥 떼 버렸던 기억. 요건 운전할 때 많이 노출되었을 피부. 선크림을 꼼꼼히 더 잘 발랐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내 피부. 원래 좋았는데 너무 신경을 써 주지 않았어. 그래도 요즘엔 스트레스도 안 받고 먹는 것도 좋은 걸로 먹으려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좀 봐주렴. 예전처럼 피부 탄력도 없어졌지만 어쩌겠니. 되도록이면 시술 같은 것 받지 않고 자연스레 잘 늙어가자. 그거면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