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성경학교의 추억
일요일에 일정이 있어서 토요일 학생미사에 갔다. 이 시각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함께 미사를 드린다.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어린아이들의 낭랑한 기도 소리와 우렁찬 찬송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반면 중/고등학생들은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쩌다 주임신부님이 강론하는 중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신부님이 무척 감동한다.
“얘들아, 웬일이니? 대답한 거야? 고마워!”
지난주엔 ‘여름신앙캠프’가 끝난 직후라 활동 영상을 상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부 신자들은 조용히 나가기도 했는데, 미사가 끝나지 않은 데다 요즘 애들이 궁금하기도 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영상은 몇 개뿐,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찍혀 있는 스냅사진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는 어느새 40여 년 전, 짝꿍의 전도로 교회에 다녔던 고등학생 시절의 ‘여름성경학교’를 떠올린다. 그땐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큰 전지에 붙여 놓으면 각자 원하는 사진에 이름을 써놓는 것으로 사진을 신청했다. 관심을 가득 받은 아이의 사진은 많고, 주변에서 배회하다 단체 사진에나 찍힌 아이들은 사진이 몇 장 없다.
당시 2박 3일간 진행되는 여름성경학교의 숙소는 대부분 바닷가 근처 초등학교였다. 제대로 된 탈의실도 없어서 물놀이하러 나가려면 교실 한편에 커튼으로 가린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곤 했다. 아이들을 챙겨주기 위해 동행한 교회 집사님들은 끊임없이 먹어대는 애들의 삼시 세 끼와 간식을 준비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설거지는 우리가 했지만, 그 많은 아이들의 식사를 바카라임지는 일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지금도 여전하지만, 교회는 봉사하고 헌신해 온 많은 어머니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되리라.
오전엔 주로 교실에서 신앙 강좌와 조별 모임이 있었던 것 같고, 저녁 식사 후엔 깜깜한 운동장에 모인다. 최소한의 조명 덕분에 하늘의 별빛이 하나둘 보이는 그때부터 거룩해지는 시간이다.
당시 우리 교회엔 연극 연출에 관심 있는 선배가 있어서 며칠 전부터 상황극을 연습하곤 했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끌려가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난의 순간들. 누군가는 냉혹한 빌라도 역을 하고, 누군가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총독 군사 역할을 한다. 엉성하게 만든 나무 십자가를 진 예수님 역은 연기가 가장 뛰어난 아이가 맡는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진 속 나는 친구가 과장되게 수염을 그린 덕분에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총독 군사였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모두들 깨닫는다.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때 모든 조명이 꺼지고 모두에게 한 자루의 초가 전달된다. 치익! 첫 번째 초가 불을 밝히고, 그 촛불은 옆 친구에게 전달된다. 그렇게 조심스레 불꽃이 전해지면 완벽한 원이 그려진다. 모두들 비장한 마음으로 작지만 꺼지지 않는 ‘세상의 빛’이 되리라 다짐을 한다.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끝나면, 모닥불이 준비되고 싱어롱 시간이 이어진다. 이땐 통기타를 잘 치는 친구의 인기가 가장 높다. 가볍게 스트로크를 하며 신청곡을 척척 반주하는 친구 옆에서 함께 노래한다. 김세환의 노래 <조개껍질 묶어>를 부르며 가볍게 율동을 하고,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부르며 있는 대로 감정을 넣기도 한다. 모닥불이 서서히 꺼져가고 마지막 남은 애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조금 더 있자고 서로를 붙잡는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대체로 첫날 그랬던 것 같다. 오후 자유시간. 모두들 물놀이 옷으로 갈아입고 가까운 바닷가나 계곡으로 향한다. 요즘처럼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더운 여름이 아니었던지라 ‘와~ 좋다, 바다다!’ 그런 느낌으로 뛰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꺅! 소리가 난다. 남자 애들 서너 명이 짝을 이뤄 여자 애들을 물에 첨벙 빠뜨린다.
‘아니, 물놀이 왔으니까 들어갈 거라고!!’ 막무가내다. 비명소리에 나도 무작정 도망치다가 ‘내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남자 애들과 키도 비등비등한데 이것들이 나를 빠뜨린다고? 더 이상 뛰지 않고 멈춰 선다. 그리고 처음 바다를 봤을 때처럼 가만히 앉아 일렁이는 파도를 본다.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꺅! 소리가 이어지고 한 명이라도 더 찾아내려는 남자 녀석들의 발소리가 이어진다.
“어?” 마지막 나만 남은 걸 그 녀석들이 발견한다.
“가만! 가만! 잠깐만!!” 소용없다. 사지가 붙들리니 속수무바카라이다. 풍덩! 바닷물이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 억울하다.
남자 애들의 만행이 전해졌나 보다. 저녁 시각, 장로님 한 분이 호통을 친다. 나중에 처자식들을 건사해야 할 녀석들이! 여자애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할 망정!!
분명 화난 표정으로 혼내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실실 웃는다. 그 정도로 그 녀석들이 재미있는 장난을 그만둘 리가 없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내가 기억하는 여름성경학교의 옥에 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