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에피소드

이불킥 순간들

by데이지

언젠가부터 눈물이 나지 않는다. 울지 않으려 해도 주르륵 흘러내려 나를 당혹게 하던 눈물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한다고 공바카라을 펼치란다. 숙제?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대처할 도리가 없었다.

“이 녀석, 그렇게 안 봤는데….” 선생님의 ‘이 녀석’ 한마디에 눈물이 흘렀다.

“아니 혼내지도 않았는데 왜 울어?”

선생님한테 한 번도 혼나거나 맞아본 적이 없던 난 두려웠다. 첫 줄부터 선생님이 자로 아이들 손바닥을 탁 때리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나는 이미 여러 대를 맞은 느낌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을까. 장학금 신청하고 담당 교수와 면담을 해야 하는데 새로 온 젊은 교수다. 성적이 월등히 좋았다면 이런 구차한 얘기 안 해도 될 텐데, 아무튼 할 수 있는 데까진 해야 한다. 내 얘기나 제대로 들었을까.

“학생보다 더 어렵게 학교 다니는 애들 많아요.”

듣기로 집안도 좋고, 미국에서 초고속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던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알기나 할까. 정확히 거절의 의미를 담은 말에 나도 모르게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 창피스러움을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교수실을 나왔다.


대학교 3학년. 내가 활동했던 교지편집부와 학생처장 간 면담이 있었다. 당초 기획한 대로 발간하겠다는 우리의 주장에 학생처장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웠다. 말이 길어질수록 언성이 높아졌다. “흥분하지 마시고요”라는 말 한마디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 나는 그게 그 사람의 약한 고리인 줄 몰랐다. 정말 흥분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가 나눴던 주제 따위는 온데간데없다. 어른한테 그 따위 말버릇이 어쩌고…. 그런 말들만 넘쳐났다.

터무니없는 고성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아, 미치겠다. 여기서 지면 안 되는데, 후배들도 있는데…. 내가 그렇게 미웠던 적이 없었다.


그다음 흑역사는 결혼식 후 이어진 피로연. 친구들을 위해 인근 대학가 주점에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덕담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남편 친구들이 남편을 잡고 발바닥을 때린다. 그러더니 신부가 춤을 춰야 풀어준단다(아, 이 고린내 나는 피로연 풍경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춤처럼 보이는 동작을 했다. 부연컨대 나는 춤을 못 출뿐더러 싫어한다. 나로선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그게 뭐냐고 남편 친구들이 신랑을 더 패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이것들이!’ 이런 느낌이었는데 바보같이 눈물이 났고 창피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눈물은 정확히 ‘열받음’이었는데, 남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 친구들은 아직도 신랑을 몹시 걱정한 신부로 나를 기억한다.


우리 남편은 내가 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신혼 초 주로 말다툼하다가 울었던 것 같은데, 그럼 이 사람은 달래주기는커녕 왜 우냐고 되레 다그친다. 우는 게 싫다나. 매정한 사람. 내 눈물은 주로 열받음, 빡침의 표현인데 그걸 모르니 의아했던 거다. 아무튼 그렇게 단련되었던가.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요즘 영화 보면서 우는 사람, 남편이다. 하하!




이제 웬만해선 울지 않는다. 갈등 해결이 주 업무였던 일을 하느라 산전수전을 다 겪었더니 담력이 커졌다. 평화주의자이기에 여전히 싸움을 싫어하지만, 큰소리에 지레 겁내던 나는 없다. 상대가 화가 났다면 판세는 내 편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조곤조곤 따진다.


구구절절한 눈물 흑역사 에피소드가 떠오른 건 얼마 전 걸려온 동생 전화 때문이었다.

“언니 고마워.”

전화기 너머 동생이 울먹이며 말한다.

얘 또 왜 이러나, 했더니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고. 교회 권사님이 아프신데, 온라인 게임 다니면서 홀로 엄마를 챙기는 50대 싱글 딸이 작은 몸으로 엄마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자기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언니가 있어서, 오빠가 캐나다에서 빨리 와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고. 엄마의 치매가 더 심해지시면 어떡하지, 나 혼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루에도 수백 번 그런 생각에 두려웠다고. 이제야 그 힘든 이야기를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감당해야 할 일이었지만 세상 불행을 내가 다 짊어진 것처럼 우울하고 원망스러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같은 집에서 살았던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조차 엄마의 치매 증상을 그저 노화로 받아들였으니, 엄마의 의심과 막무가내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던 동생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그럼에도 내가 큰 힘이 됐다고 고맙다고 말해 주니 얼떨떨해서 어버버 했다. 원래 우리끼리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말이다.


동생은 요즘 울보다. 엄마를 만나고 나오면서도 울컥한다. 그땐 몰랐는데 엄마가 해준 따뜻한 말들이 기억난다고, 돌아보니 사랑이었다고.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또 울먹인다.

난 감정이 메말라버린 걸까.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아빠, 잘 계시죠?” 따뜻한 인사를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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