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떻게 늙어갈까
M을 만났다. 우리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었던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7년은 넘었지 싶다.
방석을 깔고 앉아야 하는 한정식 집 내부를 보고 M이 난감해했던 기억만 선명하다.
- 나, 허리가 안 좋잖니.
대표 약골이라 할 만큼 비쩍 마른 애라 늘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이젠 허리라니.
옛 가옥을 살린 한식당은 그 근처 맛집이라 데려온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나갈걸. M이 괜찮다는데도 먹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긴 코로나 시절이 있었고, 퇴직 후엔 부모님을 돌보는 일로 분주했다. 그간 몇 번 전화 통화를 하면서 다음엔 꼭 만나자 했는데 지난번에 M이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 얘, 이러다 우리 죽기 전에 못 보는 거 아냐?
- 그럴 리가. 내가 조만간 연락할게.
- 그래, 서울 올라올 때 꼭 연락해.
M은 얼마 전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 자주 교류했던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뜨는 걸 보니 죽는다는 게 그리 먼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왠지 쓸쓸한 듯한 M의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이번엔 바로 약속을 잡았다.
- 야, 너 언제 머리를 이렇게 길렀니?
- 넌 또 왜 더 말랐어?
오랜만에 만나 무척 반가우면서도 세월 탓인지 이야기는 겉돈다. 어릴 적에 아이들이랑 같이 본 적도 있는 터라 애들 근황을 묻고 몇몇 친구들 얘기를 나누고 나니 할 말이 없어진다.
뜬금없이 M의 옛이야기를 물었다. 오래전부터, 그의 결혼이 그 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모르겠어. 선 보고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땐 그랬잖아. 사실 나, 결혼식 당일에 갈까 말까 생각했잖아.
결혼 이후 M과 나의 삶은 조금씩 멀어졌다.
M이 보기에 나는 참 안 풀리는 삶이었고,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안 쓰는 무심한 엄마였다.
그러다 내가 지방으로 이사하면서 우린 물리적으로도 멀어졌다. 어쩌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다였다.
그런데 이젠 우리가 정말 나이 드는 모양이다. 예전보다 대학 시절 생각이 많이 나고, 그럴수록 친구가 그리워진다.
아이들이 하나둘 독립하니 집이 너무 휑하다는 M. 복층아파트에 산다는 애가 더 늙으면 24평 아파트에 살고 싶단다. 친정 부모님을 보면 32평 아파트를 관리하는 것도 버거운 것 같다나. 나이 들더니 얘가 미니멀리스트가 됐나.
일이 있어 딸아이 집에 며칠 머물렀다. 잠깐 하루 이틀 잔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4박 5일간 머문 건 처음이다. 이번엔 차도 갖고 오지 않았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나 검색하는데, 아뿔싸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예전 같으면 NFC에 교통카드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을 텐데, 언젠가부터 작동이 안돼 쓰지 않았다. 실물 카드가 없는데 등록이 안 되면 어떡하지, 진땀이 난다.
물론 카지노택시 앱이 깔려 있으니 정 안 되면 택시를 타면 된다. 하지만 시외버스비보다 비싼 택시비를 내는 건 아까운 일이다. 다행히 교통카드 연계 신용카드가 살아 있었다. 검색한 대로 앱 하나를 다시 깔고 설정을 몇 개 변경해 본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갖다 댄다. 여의치 않으면 바로 내려야 하므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터치하는데 삐빅! 효과음이 들린다.
다행이다. 그래도 아직 스마트한 나를 칭찬해.
뚜벅이로 수도권 주민의 삶을 체험해 본다. 영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우리 동네랑 비교하니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이곳이 부럽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친구 M을 만났고, 마을버스를 타고 쇼핑몰에 갔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페까지 걸어가서 드립커피를 마시고 바카라을 읽었다.
순간순간 과거의 엄마 생각이 났다. 친정에 가끔 가면 엄마는 소소한 물건들을 내게 주시곤 했다. 네모난 라면 냄비, 시원한 여름용 이불….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계실 때 가끔 백화점을 구경하러 갔다 사 왔을 물건들. 당신이 건강할 땐 그렇게 쇼핑하면서 무료한 하루하루를 견디셨을 것이다. 그러다 그마저 시들해진 뒤엔 동네 산바카라 정도만 하시더니 나중엔 거의 외출도 하지 않으셨다.
문득 20년 후의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M은 여든 살도 아니고 일흔까지만 살고 싶단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살더라고 무시했지만, 여든이라 해도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20년이다. 과연 우린 어떻게 늙어갈까.
딸아이의 아파트가 마치 내 집인 양 쓸고 닦는다. 밀린 빨래를 하고 여름 이불을 준비한다. 나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조금 번거롭지만 스스로를 잘 챙기기로 한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인 듯한 스무 평 아파트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M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단출한 삶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