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암
킥판 발차기가 제일 어렵다.
수영 강습을 받으면 수업 시작할 때마다 몸풀기로 킥판 발차기를 하라고 하는데 25미터를 제대로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럴 때 내 몸은 한없이 무겁다. 동갑 친구 P는 느리게라도 끝까지 완주하는데, 나는 번번이 멈춘다. 코어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한때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도 했는데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초-중-상급반 과정이 끝난 뒤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P 같이 운 좋은 친구들은 다시 초급반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자유수영을 하거나 다른 수영장으로 떠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주 3일, 아침 6시 30분 전후에 수영장 가는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자세를 교정해 주겠다는 Y언니의 제안은 솔깃했지만 언니 따라 오후 1시에 수영장으로 가는 건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자유수영을 시작한 뒤로 킥판 발차기를 잘해 보리라 맘먹었다. 지금도 여전히 중간에 멈출 때도 있지만 노력 중이다.
무념무상 발차기에 집중하던 어느 날 작은애 어릴 때가 생각났다. 큰애 때는 좋은 유치원에 보내겠다고 이른 새벽 줄 서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독 건물에 널찍한 마당이 있는 유치원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제일 좋은 유치원이라는 평판도 고려했다. 보내 보니 무척 피곤했다. 원장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학부모들의 자잘한 불만을 조기에 무력화시키는 재주가 있었고, 엄마들의 약한 고리인 ‘조기 교육’을 위해 이런저런 추가 비용을 청구했다. 몇 번의 학부모 회의에 가본 뒤에야 내 교육 철학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작은애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가까운 유치원에 보냈다가 지방으로 이사한 뒤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으로 옮겼다. 너른 운동장에 적은 인원, 내가 맘에 드는 조건이다. 처음 병설유치원에 간 날, 학교 운동장을 둘러보던 아이가 ‘구름사다리’에 손을 뻗는다. 한 칸 두 칸, 힘이 달리는 모양이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구름사다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완주하는 거야. 내 예상과 달리 아이는 금세 구름사다리를 정복했고, 몇 개 없는 학교 운동장의 놀이 기구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내 킥판 발차기가 그 구름사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수영하면서 킥판 발차기만 잘해도 성공이야. 처음엔 25미터 왕복도 버거워했는데 조금씩 늘고 있다. 가끔 물에 뜬 듯 가벼운 느낌이 들면 기분이 좋다. 허벅지 근육도 조금 생긴 것 같다. 옆 레인을 보니 나랑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킥판 발차기를 하며 유유히 지나간다. 어쩜 그렇게 힘 안 들이고 하느냐고 너무 부럽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말한다.
“언니, 이래 봬도 난 수영 경력이 20년이에요.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요즘엔 허리가 안 좋아서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무시할 수 없는 시간들. 얼마 전 <소라와 진경>에 나온 진태옥 디자이너가 떠올랐다.
93세인데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디자이너. 그는 디자이너로서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 번, 1천 미터를 수영한다는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하긴 육십 대 중반인 Y언니도 매주 세 번, 2천 미터씩 물을 가른다. 지금의 기세라면 이 언니도 진태옥 디자이너 못지않게 오래오래 수영장을 찾을 것이다. 늦게 시작한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자유수영은 자유롭긴 하지만 피드백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외롭다.
어느 날 챗GPT에게 이렇게 물었다.
- 나랑 같이 수영을 시작한 친구들은 모두 50미터를 몇 번씩 왕복하는데 난 아직 못해, 괜찮은 거야?
- 지극히 정상이에요. 아직 수영 배운 지 1년이 안 됐을 땐 자세가 훨씬 중요해요. 50미터를 왕복해도 자세가 좋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해요. 최대한 힘을 빼고 자세에 집중해 보세요. 조만간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하게 왕복하고 계실 겁니다. 응원합니다!
나참, 이런 격려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