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만난 언니
“혼자 걷고 있길래 외로울까 봐 들어왔더니 벌써 가는 거야. 한 번 더 걸어~”
A언니가 내 손을 잡는다. A언니에게 동행이 있길래, 괜찮다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수영 배운 지 1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못한다. 자유형은 숨차고, 배영은 삐뚤빼뚤 가고, 접영은 포기했고, 그나마 평영이 할 만하다.
그날도 헉헉대며 수영을 마친 터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7시반 수업이 끝나기 전에 나가야 샤워장이 붐비지 않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다 씻고 탈의실로 향하는데 A언니를 또 만났다.
“등 닦아주려고 했더니 벌써 다 했어?”
이 언니는 왜 이렇게 나를 챙겨주실까. 지난번에도 쓱쓱 싹싹 내 등을 밀어주셨다. 말라서 넘어질까 봐 걱정된다며(농담도 참)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꼭 잡고 당신보다 길고 큰 내 등을 닦아주셨다. 남이 닦아주면 어찌나 시원한지,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는데 이젠 기꺼이 등을 맡긴다.
A언니. 사실 여든이 넘은 왕언니이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나와는 오며 가며 인사를 한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오래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 주신다. 사실 수영장엔 알게 모르게 텃세를 부리는 그룹이 있는데 이분은 그런 벽이 없다. 늙으면 냄새난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 곁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조심스러워하시는 분이다. 그 시간대에 나오는 누구와도 밝게 인사를 나누는 분. 얼핏 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래선지 친화력이 뛰어나다.
A언니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도 수영을 배우셨으면 어떠셨을까. 내가 초등학교 때였던가, 고질적인 귓병을 앓던 엄마가 수술을 하고 오시더니 이렇게 간단한 건지 몰랐다고 허탈해하시던 기억이 난다. 완치되셨으니 용기를 내서 평생 해보지 못한 수영을 하셨으면 어떠셨을까. 몸도 건강해지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수록 A언니가 부럽다. 저 연세에도 저렇게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게 멋지다.
그런가 하면 B언니도 있다. 이 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내가 수영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말 자유수영에서 만났다. 내가 하는 게 얼마나 어설펐는지 발차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분이다. 물에서 나와 걸터앉으라고 하더니 허리를 곧게 세우고 발을 이렇게 차야 한다고 한참을 봐주셨다.
“그래, 제대로 차니까 근육이 움직이는 게 이렇게 보이잖아. 우리가 배울 땐 말이야, 발차기를 얼마나 힘들게 가르쳤는지 수영 끝나고 다들 엉금엉금 기어나갔어.”
이제 그만 해주셔도 되는데, 라고 생각할 때까지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살짝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분은 엄격한 기강파다. 연배는 A언니와 비슷하거나 약간 많은 듯한데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샤워장에서 C언니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다가왔더니, 물 끄고 오라고 엄히 말씀하셔서 분위기가 싸한 적이 있었다.
언제나 수영장을 스캔하듯 훑으며 문제가 없나 살피는 분. 관리자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분. 웃음기가 없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분.
나는 나중에 A언니처럼 될까, B언니처럼 될까. 살가움이 없는 사람이니 A언니는 못 될 것 같고, B언니는 내가 무서워하니 안 될 것 같고. 아마도 특색 없는 어르신에 머물 것 같다. 그래도 웃으면서 인사 잘 건네는 어른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많다고 함부로 말을 놓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D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봤다고 내게 줄곧 말을 놓고는 뜬금없이 어느 날 내 나이를 물어 왔다. 그러곤 아, 그럼 내가 언니네, 그래서 황당했다. 아마도 염색 시기가 지나 부쩍 희끗해진 내 머리카락 때문이었나 보다. 그래 봐야 나랑 몇 살 차이가 안 날 것 같은데, 난 그의 나이가 궁금하지도 않다.
A언니 덕분에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다정한 한 마디가 주는 따뜻한 기운. 나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