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영의 쓴맛
아니 이렇게 슝슝 나아가는 거였어? 와우!
오리발만 신었을 뿐인데, 다들 함박웃음이다.
살살 차도 25미터 질주는 금방이다. 되레 무리하면 발목이 안 좋을 수 있다고 선생님이 주의를 준다.
오리발 덕분에 손동작에 집중하게 됐다. 오랜만에 선생님한테 “그렇지! 손을 그렇게 모으고!” 소리를 들었다. 자유형 할 때마다 그렇게 하면 발차기도 안 되고 동작이 무너진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마음속에선 ‘대체 어떻게 하라고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딴엔 분명히 두 손을 모은 다음에 팔을 저었던 것 같은데 자꾸 아니라고 하니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했다.
그런데 도통 몰랐던 문제가 뭔지 좀 알 것 같다. 자유형으로 50미터도 갈 수 있으니 내 딴엔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발차기가 잘 안 돼서 급하게 팔 돌리기를 하는 게 문제였다. 오리발이 내 발차기를 수월하게 해 주니 마음도 덜 조급해졌다. 아, 이렇게 하라는 거구나.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오리발의 부작용도 있다. 그 편함을 알아버려서 발차기가 더 하기 싫어진다. 게다가 난 코어 근육이 약해서 자꾸만 하체가 가라앉는다. 두 팔을 휘저으며 겨우겨우 끌고 가니 힘들다. 늘 나를 봐주는 언니(나는 그를 코치라고 부른다)가 코어에 힘을 팍 주고 하라는데 그 느낌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통증을 느낀 건 접영 팔동작을 배우고 몇 시간 지난 다음이었다. 그날의 수업 내용은 이랬다. 둘이 한 팀이 되어 한 사람은 엎드려 어린이풀에 상체를 띄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의 발목을 꼭 잡아 준다. 두 팔을 뒤쪽으로 힘 있게 밀었다가 나비처럼 활짝 펼친 다음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쭉 뻗는다. 사실 시작부터 무서웠다.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다. 게다가 다리를 잡아주는 힘이 너무 셌는지 나는 몇 번 하지도 않고 종아리에 쥐가 났다. 코어 힘으로 상체를 들어 올리는 것도 버겁다. 옆 사람은 선생님이 그만! 할 때까지 계속해서 동작을 연습하는데 나는 풀에 얼굴을 박으며 몇 번이나 쉬었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았으면 됐지, 뭐. 정신승리하듯 중얼거린다.
“자, 다음엔 다시 우리 레인으로 들어갑시다!”
휴, 살았다. 워밍업으로 스케이트 드릴로 갔다가 한 팔 접영으로 돌아오기. 접영 손동작에서 팔을 뒤로 뻗는 것까지만 하니 어렵지 않다. 게다가 오리발을 신었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때보다 허리를 힘껏 젖혀 상체를 띄운다. 그리고 한 팔 접영. 그날따라 이상하게 오른팔로 물을 가를 때마다 옆구리가 아팠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팔 접영 동작. 어린이풀에서 연습한 대로 하면 된다는데 어림도 없다. 모두들 살려 달라는 듯 어푸어푸. 나는 저만큼도 못 하겠다. 맨 앞줄 고수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침 준비를 하는데 이상하게 허리가 묵직하다. 어? 시간이 갈수록 허리가 쭉 펴지지 않는다. 오른쪽 갈비뼈 부위도 아프다. 급한 대로 챗GPT에게 묻는다. 접영 팔동작 연습하고 아픈데 왜 그런 거야? 그럴 수 있단다. 혹시 갈비뼈에 금이 갔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특정 부위의 찌르는 듯한 통증이 아니라면 근육통일 거란다. 그렇담 다행.
아프다, 병원에 간다, 당분간 수영을 쉬라고 한다. 이 시나리오가 제일 두렵다. 병원에 갈 만큼 아픈 건 아니어야 한다. 식구들의 걱정이 더해지면 내가 더 힘들어진다. 일단 몸이 회복될 때까지 쉬자.
동갑내기 수영 친구에게 내일 수업은 못 갈 것 같다고 카톡으로 알린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얼른 나으라고 한다. 다음날 오후에 친구에게 묻는다. 진도를 나가는 날은 아니지만 얼마나 연습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내 맘을 아는 듯 자세히 알려준다. 50미터 자유형 왕복에 평영, 접영킥 세 번에 양팔 접영, 접영킥 두 번에 양팔 접영, 접영킥 세 번에 평영 팔동작, 오리발 끼고 접영…. 아, 접영 연습에 집중한 날이네. 열심히 물살을 가르는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들 괜찮은데 나만 아프다니 슬프다. 무리하지 말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코어 근육을 키우는 스트레칭을 꾸준히 할걸.
금/토/일/월 나흘간 푹 쉬었다. 70% 정도 회복된 것 같다. 드디어 수영장에 갈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수영에 진심인지 몰랐다. 그동안 너무나 하고 싶었다. 사실 일요일에도 수영 가방을 싸놓았다가 무리하지 말자고 포기했다.
허리가 아파서 쉬었다고 했더니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병원엔 갔어? 내가 아는 한의원에 가면 즉방인데 알려줄까요? 근육이완제를 먹으면 괜찮아지는데. 허리 계속 안 좋으면 접영 하면 안 돼요. 수영 전후에 몸을 충분히 풀어줘야 해….
위로와 걱정과 관심을 듬뿍 받았다. 좋은 사람들. 어쩌면 매일 만나는 이들이 그리웠을 수도.
화요일 첫날은 우리 반 레인 옆에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접영은 못 해도 선생님 설명은 중요하니 자유수영을 하다가도 집중해서 들었다.
다음날 수업 시작. 모두들 50미터 레인으로 향하고 나를 포함 저질 체력 몇몇이 25미터에 남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아는 선생님이 묻는다.
“여기는 재활팀인가요?”
“네!” (모두들 웃는다.)
이제 99% 회복된 것 같다. 이제 제대로 접영을 해보고 싶다. 그래도 무리하진 말아야지, 이번 아픔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