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고비1-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을 권리

26번째 출근의 기록

by어른이 된 피터팬

문제가 나에게 있는지, 상황에 있는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직을 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제대로 해석하는 일이었다.


이직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변수를 품고 있었다. 막상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알 수 없고 들어가고 난 뒤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긴다. 리더가 바뀌기도 하고 조직이 개편되기도 하고 함께 일할 거라 믿었던 사람이 떠나기도 한다.


변화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아직 조직의 언어와 관계, 일하는 방식조차 익히지 못한 신규 입사자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이 원래 이런 조직의 특성이고 무엇이 일시적인 혼란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직 초기에는 사소한 사건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내가 잘못 온 걸까.’
‘내가 생각보다 일을 못하는 걸까.’

한번 이직을 해봤으니 두 번째 이직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구직 사이트를 다시 열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그러나 떠나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일이 있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



팀장님의 마지막 선물, ‘상황’이라는 변수


퇴사를 앞둔 팀장님과 마지막 원온원을 했다. 나를 이 조직으로 이끌었던 리더가 떠나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했다. 상위 리더와 일하는 방식의 결이 맞지 않았다. 그는 입사 후 처음 몇 달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때는 정말 천국이었어요.”

상황이 우호적이었고, 손발이 잘 맞는 상사와 함께 일하며 즐겁게 몰입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같은 회사, 같은 직무,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경험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이 바뀐 것도 있었고 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바뀐 것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입사하자마자 마주한 팀원들의 연쇄적인 퇴사, 갑작스러운 조직 변화, 우리 팀을 향한 차가운 시선, 결이 맞지 않는 상위 의사결정자와의 동행. 이 모든 상황을 내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자꾸 잊고 있었다.


낯선 조직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자신에게 원인을 돌린다.

‘경력직인데 내가 왜 이것도 못하지.’
‘내가 좀 더 잘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빨리 증명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팀장님은 떠나면서 내게 말했다.

“상황이 변하면 또 달라질 수 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세요.”


무리한 요구가 들어오더라도 당장은 어느 정도 받아내며 경험해보라고 했다. 조직은 계속 움직이니 어느 순간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고. 다만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스스로 마일스톤을 정해도 된다고 했다.


여기까지 해보겠다는 지점. 여기까지는 경험해보고 판단하겠다는 지점. 그는 이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 자신의 역량이 넓어졌고 이전 조직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결국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떠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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