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다른 선

계약직이라는 경계선 앞에서 알게 된 것들

by어른이 된 피터팬


새로운 회사에 와서 처음 경험한 문화 중 하나는 계약직이 많다는 것.


이전 회사는 공채 문화가 자리잡아 입사 동기가 있고 신입사원이 기수로 들어오고 대부분 정규직으로 입사해 꽤 오랫동안 회사를 다녔다. 계약직 동료를 가까이에서 볼 일은 거의 없었다.


몇 년 동안 내가 만난 계약직 동료도 딱 한 명이었다. 육아휴직을 간 선배의 자리를 일정 기간 대신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었다. 함께 일한 기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이었지만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유쾌했고 야무졌고 일을 잘했다. 나와 결도 잘 맞았다. 계약이 끝난 뒤에도 인연은 이어졌다.


주말에 같이 등산을 가고 카페에 앉아 몇 시간씩 인문학 이야기를 했다. 집들이를 가고 그녀의 출산 소식에 아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회사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한 시간씩 통화한다.


그녀를 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그 사람의 능력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것. 내게 그녀는 그냥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유쾌한 동료였고 자기 색깔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다만 정규직 공채라는 익숙한 경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경력을 쌓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후 다른 회사의 정규직으로 이직했다. 당시의 계약직 경험은 부족함의 증명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했던 경력의 한 조각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계약직에 대해 편견이 없었다.


그런데 계약직에 대한 편견이 없는 것과, 계약직이 많은 조직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은 꽤 다른 일이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선


새로운 회사에는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첫 커리어를 시작하며 경험을 쌓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경력이 있는데 해당 포지션의 조건에 따라 단기계약직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다. 계약을 연장하며 계속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제 하는 일만 놓고 보면 정규직과 무엇이 다른지 잘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조직에서 새로운 경험을 얻고 싶어서, 다른 산업이나 직무에 도전하고 싶어서, 다음 커리어를 위해 필요한 경험이라고 판단해서 계약직을 선택한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서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조직에 빠르게 적응하고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런데 같이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고용형태의 차이가 불쑥 나타난다.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다르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다르다. 들어갈 수 없는 업무 채널도 있고 열람할 수 없는 문서도 있다. 복지나 회사 비용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도 다르다. 나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약의 목적과 기간이 다르면 권한과 지원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회사의 모든 정보를 모든 사람에게 열어둘 수도 없다. 당연히 필요한 선이 있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 선에 익숙한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번은 단기계약직 동료와 밥을 먹었다. 평소처럼 회사에서 지원되는 식대로 함께 계산하려 했는데 그제야 알았다. 계약조건상 그녀는 식대가 급여에 포함되어 있어 내가 사용하는 방식의 식대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굉장히 작은 일이었다. 누구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당사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괜히 당황했다. 몇 분 전까지 같이 일 이야기를 하고 웃고 떠들었는데 계산대 앞에서 갑자기 ‘아, 우리는 회사와 맺은 계약이 다르지.’ 라는 사실이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 뒤로 같이 밥을 먹을 때는 가끔 내 식대 한도 안에서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골랐다. 김밥을 몇 줄 사서 같이 먹기도 했다.


회사 정바카라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조직도 돌아간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순간이 자꾸 어색할까. 아마 당사자들은 이미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규직만 있는 조직에서 오래 지낸 내가 혼자 유난을 떠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그렇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선이 관계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그 순간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계약직이라는 단어가 회사 밖으로 따라나갈 때


한 단기계약직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사적인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요즘 남자친구와 관계가 좋지 않다고 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데 남자친구가 본인이 계약직이라는 점 때문에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듣는 순간 마음이 복잡했다. 나 역시 결혼을 생각한다면 상대가 안정적인 상황이기를 바랄 것이다. 현실적인 고민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네가 계약직이라서 결혼이 고민돼”

라고 직접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남자친구가 가진 고민 자체는 이해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건 배려가 없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일기를 썼다. 회사에서는 단지 고용형태를 구분하는 한 단어가 누군가의 삶에서는 결혼과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회사 안에서만 끝나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계약직’이라는 한 단어로 사람을 뭉뚱그릴 수 없다는 생각을 끄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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