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을 이야기 - 엄마, 서운함, 시작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사주 상으로도 차가운 겨울 바다의 바위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깨끗한 느낌이지만 달리 보면 조금 춥고 외로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화끈하고 따뜻한 계절인 여름이 늘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여름이 되면 비염도 덜하고, 마음도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이 들뜬다. 그렇게 여름은 나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모든 계절에 시작이 있듯 끝도 반드시 찾아온다. 신기하게도 한 여름의 꼭대기에서 어느 날 입추가 되면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대부분은 더위가 꺾였다고 다행이라 하지만 나는 축제가 끝난 아이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듯 아쉽고 서러운 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 이후의 계절들은 공연이 끝난 빈 무대처럼, 어두운 계절로 들어가는 전주곡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나와는 정 반대로 가을을 가장 사랑하신다. 내가 엄마랑 스무 해 가까이 한 집에 살았었지만 학창 시절에는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그것도 넌지시 지나가는 말을 듣고야 그녀의 남다른 애정을 눈치채게 되었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엄마는 괜히 어디를 가보고 싶고, 맛있는 것도 더 당긴다고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건강이 좋았을 때에는 내가 그녀의 곁에 없었고, 지금은 아빠의 컨디션과 엄마의 건강 이슈로 긴 여행은 감당을 할 수가 없다.
예전 이맘때 즈음 엄마의 컴퓨터 설정을 바꿔드리다가 화면 보호기를 꺼버린 적이 있었다. 그 화면 보호기는 매일 장소를 바꿔가며 세계 다양한 유적지와 명소를 보여주었다. 엄마는 나에게 그 화면을 다시 볼 수 있었면 한다고, 그걸 보면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 나는 괜히 마음이 아파와서 오히려 그 말을 더 가볍게 들으려 했었다. 못된 딸이다.
이번 연휴에는 십몇 년 만에 고향 대구에 가게 되었다. 네비를 찍었더니 다섯 시간이 조금 못되게 걸린다고 나온다. 내가 이토록 태어나서 자란 곳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나의 학창 시절과, 젊었던 부모님의 모습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문득 내 나이에 엄마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 내가 고3 수험생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 그때 정말 젊고, 어렸구나.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맑은 하늘과 산등성이의 단풍이 이상하리만큼 깨끗하고 예쁘게 보였다. 떠올려보면 그토록 좋아하던 여름을 대하는 내 마음과 자세도 예전 같지만은 않은 것 같다. 더위의 열기에 맞춰 늘 여름방학 즈음 남편과 떠났던 배낭여행은 예전 일이 되었다. 6월 말 즈음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입소하며 장마가 왔는지, 무더위가 찾아왔는지를 모를 정도로 지냈던 그 순간부터 열이 많은 아이 때문에 종일 에어컨을 틀며 보낸 수많은 여름들. 그래서 요 근래에는 여름이 어떻게 와서 어떻게 지나가는지 그 모습도, 모양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 즈음에서야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되었던 것 같다. 예전 커튼콜 같던 서운한 그 계절을 이제야 조금씩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나는 가을이 제일 좋아.'
우리 엄마의 말처럼 나도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 가을예찬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꼭 이번 가을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단풍 구경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깨끗하고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도장처럼 찍혀있다. 푸른 산등성이 중간중간 빠알간 물이 예쁘게 번져간다. 엄마가 사랑하는 계절이 예쁘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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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을은 어떤 계절? 3 단어로 표현한다면. 에서 시작된 글 ^^
[서운함 , 시작, 엄마] (2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