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가공과 유가공에서 탄생한 현대 소재산업

식품소재 가공의 역사와 기술적 뿌리

by여러가지 식품연구소

들어가며 — 식품소재 가공이 어려운 이유:


식품소재를 만드는 일은 언뜻 단순해 보인다. 콩에서 단백질을 뽑아내고, 옥수수에서 전분을 분리하고, 우유에서 지방을 거둬내는 일이 그리 복잡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식품소재 제조는 현대 산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까다로운 분리·정제 공정 중 하나다. 그 이유는 바로 식품을 이루는 성분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천연 원료 안에서 단백질, 전분, 당류, 유지, 섬유질, 기능성 성분은 서로 복잡하게 결합하거나 에멀전(emulsion) 상태로 분산되어 존재한다. 따라서 한 성분만을 고순도로 분리하려면 그 외의 모든 성분을 손상 없이 가능한 한 원래 상태로 남겨야 한다는 상충 조건이 항상 존재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성분은 열, pH 변화, 산소, 기계적 전단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백질은 쉽게 변성(denature)되고, 유지는 산화되며, 전분은 가열하면 호화(gelatinization)되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구조가 변한다. 다시 말해, 식품소재의 가공은 '살아있는 물질’을 다루는 정밀한 외과 수술에 가깝다.

더욱이 식품소재는 그 최종 용도가 사람이 섭취하는 것이므로, 잔류 용매, 열 손상, 이물 혼입에 관한 안전 기준이 의약품에 버금갈 만큼 엄격하다. 저비용·대량생산이 필수인 식품 산업의 경제 논리와, 고순도·고안전성을 요구하는 품질 논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야말로 식품소재 가공 기술의 영원한 숙제다.


1. 소재 가공의 역사 — 불 앞에 앉은 인류에서 산업혁명까지:

인류가 식품을 '가공’한 역사는 인류 그 자체의 역사만큼 길다. 약 40만~3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초기 호모속은 불을 이용해 곡물과 콩류를 조리하기 시작했다. 날것으로는 소화되지 않는 전분이 불에 의해 호화되고, 독소 성분인 항영양인자(antinutritional factors)가 불활성화되면서 비로소 인류는 식물성 원료로부터 에너지와 단백질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단계가 식품 가공의 첫 번째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약 1만~1만 5천 년 전), 인류는 유목·수렵에서 농경·목축으로 전환하면서 밀, 보리, 콩류 같은 곡물과 양, 염소, 소의 젖을 정기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빵 굽기(약 1만 4천 년 전)와 치즈 만들기(약 8천 년 전)의 고고학적 증거가 나타난다. 이미 이 시기부터 인류는 우유에서 지방(크림)과 단백질(치즈 커드)을 분리해내는 원초적 소재가공을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중세를 거쳐 근대 초입에 이르기까지, 식품 가공의 진보는 제분 기술의 발전을 중심축으로 삼았다. 로마 시대부터 흰 밀가루는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었고, 밀기울과 배아를 걸러내 백색의 고순도 전분 위주 밀가루를 얻는 기술은 지속적으로 정교해졌다. 19세기 중반 증기기관과 롤러 밀(roller mill)의 등장은 밀 제분을 완전히 산업화했고, 이것이 식품소재 가공의 두 번째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소재 가공의 뿌리는 크게 두 갈래에서 발원한다. 하나는 곡물(grain) 을 빻고, 체에 거르고, 침지·분쇄하여 전분·단백질·섬유질을 나누는 곡물가공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우유로부터 지방(크림), 단백질(카세인·유청), 당(유당)을 분리하는 유가공 기술이다. 19세기 말, 이 두 기술 계보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기계화·규격화·대량생산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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