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전국적으로 여름 더위가 이어졌습니다. 오후 4시를 기준으로 서울이 29.5도, 강릉은 30.6도까지 오르며 전국적으로 때 이른 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기온이 금세 떨어지니 밤까지 밖에 계신다면 일교차에 신경 써주셔야겠습니다. 일요일인 내일도….”
더위가 5월의 복판을 급습했다, 뉴스에서는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더위로 낮에는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토요일 오후 모처럼 식구들과 외식을 나가려는데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그나마 선선해 긴팔만 입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급히 옷장 안쪽에 넣어둔 여름옷 상자를 꺼냈다. 반소매 티셔츠를 한 벌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식당에 도착하니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여름 옷차림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샤부샤부. 요새 간이 세고 자극적인 음식을 잘 못 드시는 엄마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운 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샤부샤부로 위장을 가득 채웠더니 팔다리가 흐물흐물 늘어졌다. 한숨 잘까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오는데 바닥에서 아까 급히 놓고 나갔던 여름옷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를 다시 넣으려다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할지 기약이 없었다. 그렇게 분기별로 돌아오는 옷 정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름옷만 꺼내 정리하고 끝날 줄 알았다.)
내 옷장과 딸아이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한쪽에는 십 년 넘게 버리지 못한, 지금의 나보다 날씬한 내 옷들이 가득했고, 다른 쪽에는 몇 번의 겨울을 동안에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딸 옷들이 젠가 블록처럼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옷 한 벌만 잘못 빼내도 우르르 무너질듯했다. 딸의 옷 대부분은 시누이에게 물려받은 옷이었다. 시누이의 딸이 우리 딸과 한 살 차이였지만, 1월생이라 가을에 태어난 우리 딸보다 키가 훨씬 컸던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옷을 물려받았다. 옷들은 상태가 좋았고, 새 옷처럼 깨끗한 옷도 많았다. 지금까지도 옷을 버리지 못했던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제 옷장이 포화 상태까지 왔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안방에서 유튜브를 보던 딸을 불러서 함께 옷 정리를 시작했다. 규칙은 단순했다. 작아졌거나 낡은 옷은 왼쪽, 아직 입을만한 옷은 오른쪽, 거기서 다시 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을 골라냈다. 평소 무채색만 고집하던 딸의 손에 살아남은 옷은 소수에 불과했다. 내 옷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이런 치수를 입었나 싶을 만큼 작은 옷, 몇 년째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지금 입기에 촌스럽거나 애매한 치수는 한 번씩 대보거나 입어보고 거울 앞에 서서 확인했다. 최종 착용 심사까지 통과한 극소수의 옷만이 다시 옷장에 돌아갈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을까? 먼지가 날려 코는 간질간질했고 정신은 점점 아득해졌다. 딸은 이제 그만하자고 했지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로 버텼다. 몇 시간에 걸친 옷 정리가 겨우 끝났다. 버리기로 한 옷들을 들고 거실에 나왔다. 라면 10박스는 가뿐히 넘을 양의 옷이 수북이 쌓여 작은 산을 이뤘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30분이 막 지났다. 기운이 다 빠져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거실 구석에 놓인 옷더미를 보고 놀란 엄마에게 간밤 옷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평소 폐지 줍는 할머니 연락처를 저장해서 술병이나 종이, 옷이 많을 때는 가지러 오시라고 연락드리곤 했다. 그 할머니께 전화해도 되겠냐는 말에 두말없이 좋다고 답했다. 잠시 후 찾아오신 할머니의 손수레에 옷을 모두 실어 날랐다. 고맙다고 인사하시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옷장을 열었다. 옷이 빠져나간 공간을 보니 한여름 냉장고에서 적당히 차가워진 사이다를 꺼냈을 때처럼 속이 후련했다. 비록 머지않아 그 자리에는 중년 아줌마의 후덕함이 묻은 옷과 십 대 소녀의 허세가 잔뜩 밴 옷들이 들어차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비워낼 때만 만날 수 있는 작고 야트막한 행복을 오래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