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하루를 건너는가
한 달쯤 전의 일이다.
예상보다 일찍 승진 소식을 들었다.
축하의 말이 이어졌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기뻐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보다 누구와 여기까지 왔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위에서 나를 이끌어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날은 오래전 같은 자리에서 부딪치고 버티며 한 방향을 바라보았던 얼굴들이 먼저 생각났다.
나에게 보답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개 중심보다 가장자리 쪽에 있었다.
그래서 몇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 되면 저녁 한 번 하죠. 다들 몸만 오시면 됩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다. 왜 갑자기 내가 저녁을 사겠다고 하는지, 그 말 속에 축하를 받겠다는 뜻보다 한 번 제대로 밥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다.
그날 나온 사람은 셋이었다.
한 사람은 오래전 내가 맡고 있던 일을 배우고 싶다며 먼저 찾아왔던 후배였다. 작은 일에도 이유를 묻고, 배울 것이 생기면 눈빛부터 달라지던 사람이었다.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자리를 옮겨 늘 조금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또 한 사람은 가장 거칠었던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이 무거워질수록 오히려 더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특별히 무엇을 했는지보다 그냥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이 먼저 생각난다.
마지막 한 사람은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스스로 낯선 영역으로 건너온 사람이었다. 원래 밝고 유연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표정이 조금 단단해지고 말수가 줄었다. 조직이라는 곳이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생각할 때 가끔 그 얼굴이 떠올랐다.
예약해 둔 식당은 도심의 큰 건물 지하에 새로 생긴 아케이드 안에 있었다. 조명이 낮게 깔린 공간이었고, 아직 상점이 모두 들어오지 않아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일부러 좀 좋은 곳을 고르기는 했지만 막상 네 사람이 마주 앉고 보니 배경이 조금 과한 것 같기도 했다.
한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 여기 느낌 괜찮네요.”
다른 사람이 웃었다.
“저 이런 데 처음 와보는데요. 약간 압도적인데.”
“제 VIP 분들이신데 사무실 앞에서 불고기 먹을 수는 없잖아요.”
내 말에 다들 웃었다.
가까운 사람들이었지만 대화가 곧장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어색해서가 아니었다. 서로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조금씩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굳이 빈 곳마다 말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침묵이 식탁 사이에 자연스럽게 놓였다.
음식이 몇 가지 나오고 나서 내가 먼저 물었다.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때요?”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출근할 때 사람들 얼굴 보면 예전이랑 달라요.”
“좀 힘이 빠져 있죠.”
“전체적으로 톤이 낮아진 느낌이랄까.”
잠깐 말이 멎었다.
“속도가 너무 빠르죠.”
내가 말했다.
“뭘 하나 이해했다 싶으면 다음 게 와 있고.”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리가 안 된 상태로 계속 다음 걸 받는 느낌이에요.”
요즘의 변화에는 숨 돌릴 틈이 별로 없다. AI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고, 어제까지 익숙했던 방식이 오늘은 낡은 것이 되고, 겨우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것을 배워야 한다. 문제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있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했다고 느끼기도 전에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늘 따라가는 쪽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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