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장 거절

by김광일

오영훈 목사는 안방 문 앞에 죽 그릇을 내려놓았다.

"여보. 밖에 뒀어요. 뭐 좀 먹어요."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어제저녁에 놓아둔 죽 그릇은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부엌으로 가서 싱크대에 부었다. 덩어리 진 것이 배수구에 걸려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안방 문은 석 달째 안에서 잠겨 있었다. 처음 며칠은 그가 아침마다 신발장 서랍에서 비상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저녁에 돌아오면 문은 다시 잠겨 있었다. 영훈은 몇 번을 그러다 열쇠를 서랍에 도로 넣었다. 영훈이 열고 싶은 건 문이 아니라 손잡이 가운데 단추를 다시 눌러 잠그는 그 마음이었다. 손을 씻고 수건에 닦으면서 그는 안방 쪽을 한 번 보았다. 문 아래로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불을 안 켠 것인지 잠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방 맞은편 작은방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바카라상도 침대도 없이 장판에 가구 자국만 네모나게 남은 방이었다. 무엇이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교회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골목에 들어서서 그는 발길을 멈췄다.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단층집이었고 마당이랄 것도 없이 대문에서 현관까지 세 걸음이었다. 정만호와 그의 아내 서명희가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대문 옆에 자전거 한 대가 자물쇠도 없이 세워져 있었는데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지 오래되어 보였다. 몇 년 전까지 두 사람은 여기서 두 정거장 떨어진 아파트에 살았다. 명희가 아프고 난 뒤에 그 집을 팔았다는 것을 영훈은 알고 있었다.

영훈이 알기로 명희는 손쓸 수 없는 말기 암 환자였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반년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반년이 삼 년 반이 넘도록 명희는 살아 있었다.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집 밖에도 못 나온다는 말이 나오고, 이번 달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 나면, 다음 달에 다시 혼자 걸어서 예배당에 나왔다. 그러기를 일곱 번이나 반복했다.

신도들 사이에 말이 돌았다.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런 은총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고 목소리를 낮춰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악마와 목숨을 거래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영훈은 그런 말을 하는 신도를 불러 앉혀 타일렀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고 했고, 병자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병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신도는 고개를 숙였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타이르는 동안 영훈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신도의 추측을 믿고 있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었다. 악마가 정말로 있어서 정말로 사람을 살려낸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최소한 두 종류의 힘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 하나님도 거기 계신다는 얘기였다. 삼 년 동안 영훈의 기도는 천장에 부딪혀 고스란히 되돌아왔고, 그는 저 위가 비어 있을까 봐 밤마다 무서웠다. 비어 있는 것보다는 계시면서 아들을 데려가신 편이 차라리 나았다. 멱살이라도 잡을 데가 있으니까. 그런데 한쪽이 거두어 간 것을 다른 쪽이 돌려준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영훈은 신도를 꾸짖던 자기 모습이 우스웠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내렸다. 서명희 집사라는 이름에서 엄지가 멈췄다. 하지만 화면이 꺼질 때까지 그는 화면만 계속 바라봤다. 잠시 후 영훈은 화면을 다시 켰고, 이번에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는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신호가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환자의 호흡처럼 길게 느껴졌다. 영훈은 생각했다. 이대로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하지. 잘못 걸었다가 말할까. 그때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목사님. 무슨 일이세요?"

"아, 집사님. 지나는 길인데 잠깐 들러도 될까 해서요. 삼십 분쯤 뒤예요."

"아. 네. 오세요."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기운이 없을 뿐이었다. 영훈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지나는 길이 아니었다. 그는 대문에서 열 걸음 떨어진 전봇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거기서 삼십 분을 기다렸다.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맸고 가방에서 성경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괜히 손목시계를 빤히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했다. 골목 끝에서 누가 걸어오면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영훈은 생각했다. 그동안 수많은 신도들의 심방을 다니면서 남의 집 앞에서 이렇게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었던가.

손목시계로 삼십 분이 지난 걸 확인하고,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고도 한참이 지나서 현관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목사님."

명희의 모습이 드러났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서 뼈마디가 먼저 보였고 그다음에 야윈 얼굴이 보였다. 볼살이 빠져 광대가 도드라졌고 목에는 얇은 스카프를 둘렀는데 그 아래 어깨가 옷 속에서 접힌 종이처럼 얇았다. 그런데도 얼굴빛은 나쁘지 않았다. 영훈은 오랜 시간 심방을 다녔으므로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알고 있었다. 오래 누워 있던 사람은 눈빛이 퀭하고 말에 힘이 없고 걷기조차 힘들어한다. 그런데 명희는 이제 막 아프기 시작한 사람처럼 보였다.

거실은 대여섯 평쯤 됐다. 장판이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벽지에는 오래된 물자국이 있었다. 한쪽 벽에 소형 냉장고만 한 기계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천 아래로 검은 전선 몇 가닥이 나와 벽의 콘센트에 꽂혀 있었다. 지금도 전기가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영훈은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명희가 부엌으로 갔다.

“집사님, 그냥 앉아 계세요. 금방 일어날 건데요.”

“과일이라도 좀 깎을게요.”

명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물소리가 나고 도마 소리가 났다. 그러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벽시계 초침이 또각또각 열 번을 넘게 지나갔다. 그제야 다시 도마 소리가 났다. 영훈은 엉덩이를 반쯤 들었다가 도로 앉았다. 부엌 쪽으로 뭐라고 말을 건네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이 다시 벽 쪽 기계로 갔다. 천 자락 끝이 장판에 닿아 조금 접혀 있었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영훈은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바지 천을 파고들었다.

접시에 사과 한 알과 복숭아 반 개가 나왔다. 사과는 껍질이 고르게 벗겨지지 않아 군데군데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많이 못 깎았어요."

"아이고, 이게 어딥니까. 저 혼자 다 못 먹습니다."

영훈은 사과 한 조각을 집어 크게 베어 물었다. 소리가 나게 씹었다. 아픈 사람 앞에서 오히려 잘 먹는 것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아픈 사람은 남이 자기 앞에서 조심하는 것에 더 마음이 상한다.

"성도님께서는 아직 출타 중이신가 보군요."

"네. 요즘은 커피머신 쪽도 같이 다녀요. 자판기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요."

명희가 접시를 조금 밀어주었다. 자기는 손도 대지 않았다. 굳이 사과 한 조각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목사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영훈도 왜 안 드시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에 영훈은 명희의 남편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요즘 성도님 일은 좀 어떠십니까?"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아요. 자판기는 이제 서른몇 대밖에 관리 안 해요. 그것도 매달 한두 군데씩 계약이 끊기고요."

"힘드시겠네요. 요즘은 다들 대형 카페에 가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이도 카페 쪽으로도 영업을 다녀요. 커피머신 넣어주고 고장 나면 고쳐주고. 그런데 그쪽은 사람이 넘쳐서 자리가 별로 없대요."

"그럼 성도님은 언제 들어오시나요?"

"요즘엔 아침 일곱 시에 나가서 밤 열 시에 들어와요."

명희는 그 말을 하면서 벽시계를 한 번 올려다봤다. 아직 오후 세 시였다.

"그럼 집사님은 하루 종일 혼자 계시는 겁니까?"

"혼자 있는 게 편해요. 누가 있으면 아픈 티를 안 내려고 힘을 쓰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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