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호크니가 세상을 떠났다. 88세. 전 세계에서 추모가 쏟아지고 있다. 수영장 그림, 아이패드 페인팅, 끝없이 담배를 물고 있던 모습. 사람들이 떠올리는 호크니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을 하나로 관통하는 게 있다면, 빛이다.
1964년, 호크니는 LA에 한번도 가본 적 없이 이주한다. 영국 요크셔 출신의 27세 청년이 미국 서해안으로 간 이유? 존 레치 소설 <City of Night>에서 읽은 '야하고 섹시한 밤문화'에 끌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도착해서 진짜로 빠진 건 LA의 햇빛이었다.
"LA의 빛은 다른 어디보다 10배는 밝다. 할리우드가 거기에서 시작된 이유도 그거다. 1910년엔 영화를 찍으려면 자연광이 필수였으니까."
그 빛 아래서 호크니는 수영장을 그렸다. 1966년 Sunbather에서는 물 위로 일렁이는 빛을 노란 곡선으로 담아냈고 1967년 A Bigger Splash에서는 텅 빈 의자, 낮은 미드센추리 하우스, 그리고 물보라만 남겨놨다. 사람은 없고 빛만 있는 그림. 이 작품은 곧 건축사학자 레이너 밴험의 명저 <Los Angeles: The Architecture of Four Ecologies>(1971)의 표지가 되면서 '세련되지만 어딘가 소외감을 주는 LA'의 이미지가 됐다.
호크니가 LA에 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60년대 영국은 동성애에 대한 슬롯적 압박이 심했다. LA에서는 자유롭게 게이로 살 수 있었다. 호크니 재단 초대 관장 리차드 베네필드의 말대로,
'LA는 그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자유는 그의 그림 속 색채와 시선,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로 스며들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근처 자택에서 호크니는 테니스 코트를 스튜디오로 개조하고 집 벽과 난간을 알록달록하게 칠하고 수영장 바닥에 코발트색 물결 무늬를 그려 서명까지 했다. 80세 생일 전날에도 다시 칠했다. 1988년에는 할리우드 루즈벨트 호텔 수영장 바닥에 빗자루에 붓을 달아 파란색 곡선을 그렸다. 지금은 많이 바랬지만 남아 있는 곡선이 수면 위 빛의 일렁임과 겹치면서 여전히 호크니의 그림처럼 보인다고 한다.
화가 조나스 우드는 호크니를 반 고흐에 비유한다.
'선의 반복, 꾸불거리는 선, 라인의 자유자재'
호크니가 평생 그린 건 결국 빛이 만들어낸 표면의 움직임이었다.
결국 호크니가 그린 것은 수영장이 아니라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한 도시의 자화상이 되었다.
https://www.nytimes.com/2026/06/13/arts/design/david-hockney-los-angeles-pool-painting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