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을 총으로 쏜 여자가 있다

by정물루

밸러리 솔라나스. 1936년 뉴저지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대학원을 중퇴한 뒤 뉴욕에서 거리의 예술가이자 성노동자이자 구걸로 연명한 사람. 1967년 'SCUM Manifesto' - 남성 해체 협회 선언문을 자비 출판해서 뉴욕 거리에서 직접 팔았다. 여자한테는 50센트, 남자한테는 1달러를 받고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유일한 회원은 솔라나스 본인이었다.


워홀의 팩토리에 드나들며 자기 희곡을 제작해달라고 몇번이고 요청했지만 워홀은 그 원고를 잃어버렸다. 출판 계약도 꼬이자 솔라나스는 워홀이 자기 작업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1968년 6월 3일, 팩토리에서 결국 워홀을 총으로 쏘고 말았다. 워홀은 거의 죽을 뻔했고 이후 평생 코르셋을 착용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솔라나스는 편집증 조현병 진단을 받고 3년 형을 선고 받았다.


아이러니한 건, 솔라나스가 워홀을 쏘지 않았다면 SCUM Manifesto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거라는 점이다. 총격 이후 이 선언문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기초 문헌이 됐다. 그런데 정작 솔라나스는 자기를 지지하러 온 페미니스트들도 거부했다. 워홀 못지않은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봤으니까


메리 해런 감독의 1996년 영화 <I Shot Andy Warhol>은 이 사건을 다루는데 색다른 시선이다. 솔라나스를 미친 사람으로도, 불쌍한 피해자로도 그리지 않는다. 워홀과 솔라나스를 동등한 위치에 놓는다 - 둘다 대중의 인정을 갈망했고 둘 다 깊이 오해받았고, 둘 다 시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팩토리 파티 장면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연주하고 사람들이 뒤엉키는 동안, 워홀과 솔라나스는 둘 다 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서 있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시선을 가장 잘 보여준다.


워홀 팬으로서, 워홀을 쏜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한 사연일 줄을 몰랐다. 30주년을 맞아 4K리스토어로 재개봉. 여성 감독, 여성 촬영감독, 여성 주연 - 2026년에도 드문 이 조합이 30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인정받지 못하는 분노, 세상이 자기를 가두고 있다는 확신 - 이건 1968년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지금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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