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대신 치맥

완벽한 삶의 판타지를 내려놓고,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연습

by이주원

많은 일정과 회사 업무들로 쉼표가 없는 요즘.

감정의 파도가 넘실거리기에 더욱 더 고요한 쉼표가 없다고 느껴진다.


지금은 오전 10시, 해야 할 업무가 많지만 상담이 취소된 김에 1시간은 나에게 쉼표를 주려고 혼자만 있을 수 있는 상담실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것도 뭔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 같은 찝찝함 때문에(뼛속까지 K-온라인 게임인) 글로도 남기지 않았는데, 그냥 오늘의 나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남기고 싶다.


후우~ 숨 한 번 깊게 들이쉬어 본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파티에서’라는 플리를 틀어둔다. 불어 특유의 그 발음을 좋아한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제2외국어 불어 했다가 성적표에 처음으로 ‘가’도 나옴.. 수우미양가 세대 ㅋㅋ


얼음이 머그컵에 부딪히며 잘그랑 소리를 내는 커피를 한 모금한다. 시원하고 향이 좋다. 얼음의 잘그랑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보사노바 재즈들이 나온다. 보사노바 특유의 산뜻하고 가벼운 통통거림이 좋다.


정말 와인 파티에 와 있는 기분이네. 오전이니까 가벼운 화이트 와인을 시원하게 해서 마시고 싶다. 달콤한 포도와 견과류를 안주로 먹으면 좋겠네.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도 많은 나. 그만큼 싫어하는 것도 많다(지금은 Pink Martini의 ‘Sympathique’가 흐르고 있는데, 산뜻하고 정말 좋은 노래다).

해야 할 일이라면 싫어도 꾸역꾸역 숙제 하듯이 살았는데 요즘은 그러기 싫다. 몸도 마음도 움직이질 않는다. 대신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더 채워나가고 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틈을 만들어서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살고 싶다.

인생이 해야하는 숙제만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순수한 호기심과 주도성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주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엄마 탓을 참 많이 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진짜 죽자고 노력하는데 왜 만족을 못해? 왜 내게 더 높은 걸 계속 요구해?


엄마에 대한 어마어마한 원망은 나의 원동력이 되어 더 더 완벽한 성공을 향해 내달렸다. 그게 어떤 상태인지도, 가능 여부도 모른 채 판타지 같은 그 ‘완벽’만을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살았다.


내가 그리는 ‘완벽’의 이미지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한 여자가 있다. (그게 바로 나다.)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그녀의 성취를 축하하는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호스트인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녀 옆에는 엄청난 슬롯적 지위를 가진 남편이 아주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다. 그리고 완벽한 영재로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있는 그녀의 자녀도 엄마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국적도 다양하다. 하나같이 그녀를 칭송한다.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고.

그녀는 전문적 능력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뛰어나서 손님들에게 멋진 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맛있는 음식들과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서버들은 순탄한 그녀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감 높은 그녀의 집과 정원도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다.

연주가 끝나고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고 수상소감을 말한다. 그동안 어려움과 역경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왔고 많은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고 부러워한다.

완벽히 아름다운 밤이다.


내가 이 장면을 말하면 모두들 물었다.

“그게 가능해?”

“남편 바꿀 거야?”

“실제로 그런 사람 본 적 있어?”


그러게. 지금 내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고.. 도윤이도 영재가 아닌디..

나 뭘 붙잡고 있었던 거지?

도윤이랑 남편 다 바꾸고도 이걸 이루고 싶은 거였나?

그건 분명 아니다. 특히 도윤이를 바꾼다고? (남편 미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영재 필요 없다. 도윤이어야 한다.

그때부터 내가 붙잡고 있는 장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단 성공한 남편 지우고 배뿔뚝이 아저씨 세우고,

턱시도 입은 영재 아이 지우고 장난꾸러기 도윤이 세우고,

호화주택 아니고 우림필유 2차 아파트로 바꾸고,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과 서버들 돌려보내고 내가 좋아하고 편안해하는(내가 잠옷 입고도 만날 수 있는) 내 사람들 부르고,

완벽한 몸매에 드레스 입은 그녀를 편안한 감촉의 77사이즈 원피스 입은 나로 바꾸고.


이렇게 바꿔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가진 것은 수용하고 못 가지는 것은 흘려보내며.

이제 와 물어본다.

‘정말 저런 인생을 살고 싶어?’


완벽한 몸매 유지하려면 운동 열심히 하고 식단도 타이트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 가족의 문화인 매주 금요일 치맥데이는 할 수 없을 거다.

몸에 딱 붙는 드레스 입고 하이힐 신으면 얼마나 불편한데. 편한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흠결 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려면 작은 실수 하나 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겠나. 나는 인간 헐랭이 그 자체인데!!

깜빡쟁이 엄마(도윤이가 붙여준 별명)에게는 너무 어려운 테스크 아닌가.


그리고 완벽하기만 한 사람, 인간미 없어.

나의 구멍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구멍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구.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내가 원하는 삶은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프랑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고 싶다가도 금요일에는 남편과 치맥을 먹고 싶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다가도 결국 가장 편한 원피스를 찾게 되고,

전공 공부를 좋아하면서도 한숨 자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헐랭이인 나를 그냥 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 삶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있다.

나의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요즘.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양해서 좋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치맥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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