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고 있는데, 가끔은 혼자인 기분이 든다
바쁜 주중과 주말이 지나갔다.
수요일, 총장님과의 멘토 간담회도 잘 끝났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다.
슬롯는 잘 봐야 한다는 압박감, 총장님과 함께하는 자리라는 긴장감, 그리고 잘해서 눈에 띄고 싶다는 마음까지. (이놈의 인정 욕구, 정말 징글징글하다.)
다행히 총장님은 말씀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라, 나는 오프닝과 클로징만 맡았다.
사전에 챗GPT와 의논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흐름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더니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마무리됐다. 행사는 예상보다 늦은 8시 45분에 끝났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남편의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다.
몇 달 전에도 세 명의 팀원을 떠나보냈는데, 이번에는 본부에서 직접 명단이 내려왔다고 한다.
총 세 명.
입사 때부터 함께했던 팀원들, 본인이 평가 점수를 매겼던 사람들이라 마음이 더 무겁다고 했다.
“다른 팀이었으면 안 잘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세 명 중 두 명은 6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했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
사람이 줄어들면 조직은 다시 재편되고, 팀장 중 일부는 ‘면팀장’이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인사팀에서 명예퇴직을 권유하는 전화가 온다고 한다.
15년 동안 한 온라인 게임만 다닌 남편의 입에서 처음으로 ‘이직’이라는 말이 나왔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나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그저 옆에 누워 있었을 뿐인데, 남편은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혼자 품고 있지 않는 모습이, 평소와 달라서 신기했고 안도감이 들었다.
남편은 원래 힘든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말해도 해결되는 건 없고, 너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퇴근 후 아이가 잠들면, 중학교 때부터 하던 디아블로 2를 한 시간쯤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휴식이다.
그와 함께 살면서, 가끔은 외로움과 단절감을 느낀다.
나는 소통을 좋아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는 힘들 때 말을 닫고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동시에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든다.
그러다 보면, 나 역시 힘든 순간에 혼자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며 외로워진다.
정작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남편이 거부하는 건 아닌데도.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김치찜을 만들고, 그가 좋아하는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고
야근하는 날에는 아침에 계란말이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줄 수 있는 방식으로, 곁에 있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현모양처 기간’이다.
남편은 소통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식이 있을 뿐.
가만히 두면, 그는 필요한 만큼 이야기한다.
그에게 적당한 거리와 시간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지금의 내가 좋다.
나는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함께 있어줄 수는 있다.
그러려면,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내가 잘 서 있어야, 그가 필요할 때 기댈 수 있으니까.
괜한 걱정으로 불안해하기보다
그와 나를 믿어보기로 한다.
이 시기도, 잘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