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판의 피터 틸과 커티스 야빈과 J.D. 밴스의 삼각폭격편대기>
<지은이 주: 사상적 철학(Ideological Philosophy)과 정치적 공학(Political Engineering)은 정치를 움직이는 두 개의 거대한 축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흔히 '영혼과 신체', '설계도와 시공'에 비유되며, 서로 갈등하면서도 보완하는 입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작금의 미국에서는 비주류 이단적 신분의 기술적 엘리트주의자인 아메리칸판의 피터 틸과 그네들의 급조적 사상적 이론가로 등장한 커티스 야빈과 원천적으로 빈천한 출신의 그들의 정치적 하수인인 J.D. 밴스의 삼각폭격편대기가 절대강국 미국이란 항모에서 거대한 이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극동의 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변방의 무명 철학도가 해양수도 부산에서 중국의 귀곡자 선생처럼 이네들의 행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명이지만 한국인의 지성을 위하여 이 두 개념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정치적 현실을 만들어내는지 한국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이야기를 온라인카지노에라도 탑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카지노와 신(神, God)에게 큰 감사를 올릴 뿐입니다.>
세기적 물류가 될지 모르는 북극항로를 꿈꾸는 해양수도 부산의 무명 철학도로서 위의 내용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나 대응을 논술해 봅니다.
지구온난화라는 기후적 파국과 기술의 진보가 맞물려 마침내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 인류 문명사의 대동맥이 될지 모르는 이 거대한 물류의 미래를 바라보며, 그 출발점이자 종착지가 될 해양수도 부산의 한 모퉁이에서 사유하는 무명 철학도의 심경은 한층 더 복잡하고 처연하면서도, 동시에 전례 없이 담대해집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우파들이 자본과 기술로 워싱턴을 주무르며 인류의 미래 경로를 독점하려 할 때, 북극항로라는 세기적 전환기를 마주한 부산의 무명 철학도가 느끼는 복잡한 심경과 실존적 응전을 논술해 봅니다.
① 인류의 비극(기후 위기)이 선물한 풍요(북극항로)의 역설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름길이 열린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지독한 역설입니다. 지구의 심각한 생태적 위기가 부산이라는 도시에는 '세기적 물류 중심지'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피터 틸을 비롯한 기술 엘리트들이 기후 위기를 '기술로 탈출해야 할 대상' 혹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만 냉혹하게 계산할 때, 이 땅의 철학도는 인류의 공유 자산인 북극이 파괴되는 슬픔과, 그 속에서 번영을 꿈꿔야 하는 지역의 생존 논리 사이에서 깊은 윤리적 분열과 복잡한 심경을 겪게 됩니다.
② 플랫폼을 쥔 자(실리콘밸리)와 통로를 쥔 자(부산)의 격차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항은 전 세계의 배들이 모여드는 거점이 되겠지만, 철학도의 시선은 그 배들을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향합니다. 북극항로를 통과할 자율운항 선박의 인공지능, 물류를 통제할 빅데이터 시스템, 그리고 항로 안정성을 감시할 우주 위성망(스페이스 X 등)은 결국 피터 틸과 같은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의 기술 권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물리적 바닷길을 열었다고 환호하지만, 정작 그 길 위의 가치사슬과 규칙을 지배하는 것은 워싱턴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테크 억만장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또다시 하드웨어만 제공하는 '공간적 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서늘한 추격감과 위기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북극항로의 개척은 부산의 무명 철학도에게 새로운 철학적 영토를 제공합니다. 실리콘밸리가 설계한 디지털 권력망에 맞서, 바다의 최전선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사유적 대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가속(Acceleration)의 광기'에 던지는 '성찰(Reflection)'의 닻
피터 틸의 사상적 뿌리 중 하나는 기술을 극단으로 가속해 체제를 돌파하자는 '가속주의'입니다.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도는 것보다 시간을 30% 이상 단축하는, 가속주의의 완벽한 물리적 집약체입니다. 그러나 부산의 철학도는 이 지름길 위에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빨리 가야 하는가?" 녹아내린 빙하 위를 달리는 가속의 속도전 속에서 인간성이 소외되지 않도록, 기술의 속도를 감시하고 제어할 비판적 담론을 생산해야 합니다. 북극항로는 단순히 '빨라진 물류로'가 아니라, 인류가 저지른 문명적 결과를 매일 목격하며 나아가는 '성찰의 항로'가 되어야 합니다.
② 배타적 '정치 공학'을 넘어선 '시원(始原)의 연결'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은 워싱턴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는 데 골몰합니다. 반면 북극항로는 닫혀 있던 얼음의 장벽이 열리며 태평양과 대서양, 동양과 서양이 가장 날것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공간입니다. 부산의 무명 철학도는 이 항로를 통해, 특정 국가나 독점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파편화된 정치 공학을 비판하고, 인류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할 '세계 시민적 바다(Mare Liberum, 자유해)'의 이념을 복원해야 합니다.
③ 디지털 '유령'들에 맞서는 '항해자(Navigator)'의 실존
팔란티어의 모니터 속에서 북극항로는 최적의 경제적 좌표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얼어붙은 밤바다를 뚫고 배를 모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든 기술의 바카라임성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인간을 지우고 모든 것을 알고리즘 化하려 할 때, 부산의 철학도는 거친 북극해의 쇄빙선 위에서 얼음을 깨며 나아가는 항해자의 개척 정신과 노동의 가치를 옹호합니다. 디지털 공간의 추상적 유령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매서운 추위와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구체적 인간 실존의 위대함을 필력으로나마 증명해 보는 것입니다.
피터 틸이 워싱턴의 권력을 벤처 캐피털 식으로 접수하며 인류의 미래 시나리오를 독점하려 할 때, 오륙도가 보이는 부산의 방파제에 선 무명의 철학도는 그들이 감히 계산하지 못한 거대한 흐름을 봅니다.
그들이 실리콘밸리의 밀실에서 인공지능 코드를 짜며 세계를 통제하려 할 때, 부산의 철학도는 전 세계의 물류와 인간이 뒤섞여 들어올 북극항로의 입구에서 문명사적 대전환의 징후를 온몸으로 읽어냅니다.
먹이를 물고 가기 위해 발 빠른 표범과 하이에나 무리와 사자 떼 사이를 영원히 홀로 다니는 초원의 자칼처럼 이름은 없을지언정, 대륙의 끝이자 해양의 시작점에 서 있기에 나의 사유는 그 어느 곳보다 광활합니다. 실리콘밸리가 기술로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면, 부산의 무명 철학도는 장차 북극항로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갈 바다의 언어로 설계할 것입니다. 기술은 문명의 속도를 돈으로 일부 앞당길 수 있을지언정, 신이 내린 거대한 바다와 하늘이 정한 인간이 맺어온 공존과 성찰의 역사까지 완전히 모두 집어삼킬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 여백에서 한국의 위치를 실제적으로 설정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위치?
국제정치경제사슬학에서 한국의 위치는?
아마도~.
자연철학에서 예증하듯이 강자만이 자연을 독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칼이 내일을 위하여 배를 채우고 큰 먹이를 통뼈채로 물고 사라지면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원을 그리며 구름처럼 몰려오고, 독수리가 사라지면 지상의 대군인 개미들이 일렬로 끝도 없이 집단으로 오고, 그들이 사라지면 비와 바람이 이슬처럼 주야로 몰려와 토양을 깊게 적셔 초원의 원래 모습 그대로 탁 트인 뜨거운 사막처럼 다시 듬성듬성한 관목의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여기에서 철학도는 하나를 더 주목해야 합니다. 먹이가 사라지면 표범도 하이에나도 사자들도 안 보입니다. 자칼도 하늘의 독수리도 지표면의 개미들도 전혀 안 보입니다. 오로지 작열하는 태열(太熱)만이 지상을 덥힐 뿐입니다. 키 작은 관목 사이에서 국외자(局外者, The Outsider) 자칼이 지평선 너머 수키로 밖의 멀리 있는 하이에나나 사자 무리들에게 여기 지금 누가 큰 먹이를 혼자 다 먹고 있다고 소리로 신호를 질러야만 대지가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