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렌의 시절 인연에 대한 깊은 인식의 철학적 한 모퉁이>
<홀로 사는 렌의 시절 인연에 대한 깊은 인식의 철학적 한 모퉁이>
고희를 넘긴, 어느 이제 막 시작한 초겨울 저녁, 노철학자 렌은 서재 창가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찬비가 내리고 있었고, 서재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골목의 가로등 불빛은 젖은 돌바닥 위에서 희미하게 갈라 번지고 있었다.
젊은 날에는 밤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바카라장에는 평생 읽어 온 나름의 철학서들이 가득 꽂혀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인생의 본질은 난해한 바카라 속의 문장보다, 지나간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 더 많이 젖어 있다는 것을.
젊은 날의 그는 인간의 의지를 믿었다.
인간은 스스로 운명을 철학적으로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철학을 사랑하며 살았다.
사상과 논리를 믿었고, 세상을 그대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지금, 그는 안다.
인간은 결국 시간 속의 존재라는 것을.
아무리 뛰어난 철학도
봄을 겨울로 바꾸지는 못하며,
떠난 사람을 불러 다시 젊은 날로 되돌리지도 못한다.
그는 문득 오래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지난 시절 함께 대학에서 공부하던 친구들,
젊은 날 말없이 홀로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사소한 충돌과 다툼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몇몇 주변의 지인들.
신기하게도 철학을 공부했다는 그가 나이를 더해 갈수록
거대한 성공보다 사소한 장면들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홀로 사색하며 보던 비 오던 날의 한적한 골목 풍경들,
행복한 찻집의 담론에서 피어오르던 차(茶) 내음,
이야기 속에 누군가에게 서로 건네던 짧은 위로의 말.
인생의 본질은 대개 그런 작은 순간 속에 숨어 있었다.
노철학자는 이제야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젊은 날에는 사랑을 붙잡으려 했다.
떠나는 것을 나의 패배로 여겼고,
헤어짐을 자신의 부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은 그에게 더 깊은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인연의 만남은 단순히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어떤 사랑은 너무 이른 시절에 만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사랑은 너무 늦게 만나 이미 지나간 생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그 인연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는 조용히 차를 따뜻하게 한 모금 마셨다.
젊은 날에는 “영원”을 꿈꾸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덧없음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모든 인연이 영원하다면
인간은 그리움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떠남이 없다면
현재의 소중함도 알지 못할 것이다.
회상에 잠긴 렌은 자꾸만 창밖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삶 전체를 멀리서 천천히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젊은 날에는 자신이 인생의 중심이라 생각했지만,
늙고 보니 인간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을 잠시 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그 사실이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했다.
꽃은 피고 지며,
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계절은 반복되고,
인간은 그 안에서 잠시 사랑하고, 아파하고, 늙어 간다.
그것이 삶이었다.
노철학자는 이제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난 자신의 젊음을 더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그때는 그때의 계절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낸 것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시절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젊은 날에는 젊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늙어서는 늙은 방식으로 가름한다.
영하(零下) 같은 차가운 창밖의 비는 점점 더 굵게 떨어진다.
다음 비엔 눈으로 올 것 같다.
뭔지 모르게 가슴에 쓸쓸한 막막(寞寞)이 스며 온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읽고 있던 오래된 바카라을 덮었다.
철학서이다.
그리고 순간의 짧은 미소를 지었다.
인생은 결국
무언가를 완벽히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스쳐 간 인연들의 의미를 늦게나마 이해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일흔의 고희를 지나며 렌이 얻은,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철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