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렌의 숙고(熟考)

(부제: 신(神)이 인류에 주신 축복)

엘리베이터 양쪽거울에 비친 렌의 모습을 이리저리 자연스레 보니 그도 이젠 확실한 초로(初老)의 인간이다. 작은 키에 흰머리가락이 가득하다. 언뜻언뜻 보이는 새치가 아니다. 그냥 흰머리이다. 요즘은 키도 더 준 것 같다. 한 5cm 정도로 확실히 줄어들었다. 같이 탄 남녀들을 보면 대개가 렌보다 훨씬 크다.


점점 작아지는 키에 그는 관심이 없다. 그저 꼬부랑 노인이 아닌 것만도 다행이다. 어차피 나이 들어가는데 키가 더 큰들 어디 쓸데도 없다.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제 노년이 되니 비뇨기과에 안 갈 수가 없다. 바로 전립선비대증이다. 다행히 좋은 약들이 많아 꾸준히 투약만 하면 죽는 날까지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단다.


취침 전에 먹어야 하는데 실수로 아침에 먹어도 별로 나쁘지 않다. 모르고 하루에 세 번 먹은 적도 있다. 잠이 오는 약성분이라 자기 전에 먹어야 하는데 렌은 자기 전이나 아침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도리어 정신만 말똥말똥하다. 더 맑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흐려지거나 잠이 오는 것도 아니다. 클리닉에 가면 자기 또래 노인들이 3,4명이 줄줄이 앉아 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라 어떨 때는 가자마자 바로 진료를 받고 나오기도 한다. 다행히 의사님이 렌보다 연하이다. 간호사님들은 자주 바뀐다. 대략 1년 정도 지나면 다른 분들로 교체가 되어 있다. 친절하고 주사도 잘 놓는다. 소변검사는 6개월에 한 번 하고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는 1년에 한 번 한다.


렌은 여전히 홀로 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그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요즘은 원룸도 시설이 매우 좋아 혼자서도 살만하다. 조용한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을 보는 것이 렌의 유일한 낙이다. 비가 올 때 보면 더 좋다. 우산들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승용차들이 갈수록 커진다. 인간들 덩치가 커졌다. 예전처럼 작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보면 렌보다 훨씬 큰 여성들이 꽤 많다. 그런데 아직 몸의 볼륨은 서구의 여성들을 못 따라간다. 렌도 예전에 목장에서 일할 때 러시아 여성들이 몇이 있어 그들의 몸매를 많이 봤다. 매우 튼튼하고 일도 잘했다. 특히 힘이 세다. 남자인 렌과 별로 차이가 안 났다. 어디서 익혔는지 양이나 젖소도 잘 다루었다.


다들 시베리아의 동쪽의 사하공화국 출신들이란다. 같이 왔다가 돈을 열심히 벌어 한 날 한시에 다 같이 가 버렸다. 2년 같이 있었는데 다들 성실했다. 멀리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마치 엉덩이가 큰 백마(白馬)들이 홀연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숙소도 다르고 말도 달라 같이 일할 때도 말을 서로 길게 걸지 않았다. 그저 메뉴엘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렌은 그게 너무나 맘에 들었다. 말도 많고 이유 없이 치근거리는 동네 아줌마들보다 훨씬 좋았다. 렌은 목장에서 번 돈으로 주식도 하고 코인도 하였다. 어디 특별히 저축할 데가 없어서 그냥 주식과 코인에 몰두했다. 저녁에 숙소에서 홀로 주식과 코인서적을 보면서 한국의 큰손들이 하는 대로만 했다. 렌은 마음에 드는 주식과 코인 바카라들을 보고 또 보았다.


이게 큰 이득을 가져왔다. 큰손들을 따라 오래 하다 보니 주식은 10배, 코인은 100배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기근성이 농후한데 바카라의 저자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솔직하고 또 솔직했다. 렌의 마음 그대로이었다. 큰손들이 지지하는 3대 주식과 3대 코인에만 저축 겸 투자를 하고 또 했다. 가난하고 사고무친(四顧無親)의 렌은 상담할 데가 전혀 없었다.


오로지 큰손들을 따라 바카라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다. 렌은 그 돈으로 여유 있게 살고 있는 것이다. 전혀 찾지를 않고 필요한 돈만 찾는다. 주식 배당금도 쏠쏠하여 재투자할만하다. 노인기초연금도 받고 있다. 소액이지만 국민연금도 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국민연금납입도 10년이 넘어 받을 나이가 되자 잘 받고 있다. 집도 차도 가족도 없는 렌이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무척 행복하기만 하다.


렌의 경험에 의하면 렌과 같은 자는 고아원이 최고다. 고아원이야말로 렌에게는 행복한 곳이다. 부모와 공식적으로 연을 끊을 수 있는 최상의 곳이다. 18세 독립을 하는 순간 그것으로 새 출발만 하면 된다. 거기에 무슨 미련과 고민이나 걱정이 있겠는가? 전혀 없다. 혼자 나와서 다다른 곳에서 일하며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도리어 신(神)에게 감사해야 한다.


감기약을 먹고는 소변이 막혀 병원에 가니 전립선비대증이란다. 감기약을 끊고 처방약을 투여하니 바로 호전이 되어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지내고 있다. 이제 튼튼한 옛날로 돌아간 건만 같은데 클리닉에 계속 다녀야 한단다. 렌은 클리닉에 갈 때마다 행복하다. 이제 비로소 갈 데가 생긴 것이다. 클리닉으로 가는 렌은 그곳이 마치 자신의 집인 것 같았다.


2주마다 가는데 증세가 너무 간단하여 의사와는 별로 할 말도 없다. 2인 1조 인 간호사들과도 인사 외는 할 말도 없다. 어떤 간호사는 매우 예쁘다. 그 간호사를 보는 것도 낙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분으로 교체가 되었다. ‘왜 갔지? 예쁜데~.’ ‘왜 보냈지? 예쁜데’, ‘좀 잡지 그랬나?’ 아쉽지만 새로 온 간호사님도 무조건 예쁘다고 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클리닉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전립선비대증이야말로 신(神)이 주신 축복(祝福)이라 여긴다. 남녀모두에 준 축복이다. 나이 든 남자들이 청춘의 아이들 마냥 전립선이 튼튼하고 에너지가 남아돈다면 이건 여자도 괴롭고 남자도 괴롭고 슬롯도 피곤하다. 전립선을 약하게 만들어 어차피 정력이 시원찮다면 마음씨라도 좋게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렌은 神(God)이 인류(人類)에게 내린 전립선비대증을 축복으로 여기고 클리닉으로 힘차게 가고 있다. 의사님이야 보나 마나 그대로 계실 것이고 간호사님들도 과연 그대로 일까? 마치 종업원으로 일하던 렌의 예전 모습과 같다. 이리저리 온라인 게임을 옮겨야 하는 일로 주인(主人)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해도 나가라면 나가야 했다.


65세가 되니 진료비도 줄었다. 진료비가 이제부터 준다는 간호사님의 말에 렌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하, 간호사님 이제 자주 올게요. 하하.” 슬슬하지만 행복했다. 렌이 처음 받는 혜택이었다. 항상 일한 만큼 받았는데, 처음 받는 혜택이었다. 말이 없었던 렌이었지만 처음 받는 행복에 입이 저절로 열렸다.


그는 이제 사실상의 부자인 셈이다. 그득한 주식과 그득한 코인이 그를 복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냥 그 돈을 그대로 두고 갈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돈만큼만 찾고 주식회사에, 코인회사에 잔여금은 그대로 두고 갈 것이다. 렌은 주식회사와 코인회사 덕분에 큰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보답으로 두고 갈 것이다.


기부나 증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국인을 믿지 않는다. 형제간의 돈도 사기 치는 족속으로 보고 있다. 형제간의 돈도 빼 가는데 무슨 기부나 증여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주식회사나 코인회사에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인 것이다. 클리닉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어떤 간호사님이 계실지 그게 제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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