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셀프 철학자 렌(Ren)

(가난한 극미의 소년이 홀로 영혼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

렌은 셀프 철학자이다. 스스로를 지성인으로 보고, 아무도 모르는 현인으로도 보고 있다. 오늘도 그는 원룸에서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보고 있다. 여느 때와 달리 오늘은 비가 온다. 초여름의 입하로 우천이다. 비가 봄비처럼 추적추적 꼬리를 물고 내려온다. 소리도 들린다. 환기통에 부딪히는 빗소리다. 토닥토닥 음악이다. 규칙적으로 딱딱 잔잔하게 들린다. 밤새 들려도 마음을 해치지 않는 소리이다.


그가 사는 원룸은 밖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실제는 안이 제법 크고 고급이다. 혼자 있기에는 이래저래 여유가 가득하다. 조용히 혼자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는 오는 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비가 내려도 좋고 차갑게 보이는 눈이 와도 좋다. 그는 맑은 날을 더 좋아한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철학하기에도 바빠 고독이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고독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렌은 스스로 잘 안다. 자신은 고독할 사람이 아니다. 고독이란 일종의 전문직으로 지난 한때의 유행이었다. 세습에 실패한 18세기 한가한 귀족들의 자식들이 하는 낭만적인 사치의 전족일 뿐이다. 고독이란 거짓으로, 스스로 유산으로 한가한 이들의 위족(僞足)으로 이미 정신이 보잘것없고 허술한 자들의 짓이다. 작금의 범인들이 한다면 정신질환의 개시(開始)가 되는 것이다.


렌이 생각하는 철학자는 단 네 명이다. 파르메니데스와 칸트와 헤겔, 쇼펜하우어이다. 더 이상은 관심이 없다. 이 네 명만 해도 버거운데 더 이상은 살펴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비유(非有)로까지 확실히 규명했고, 칸트는 인간 하나하나를 세밀히 정립했고, 헤겔은 그런 인간들을 역사의 철학에 세워 놓았다. 또 쇼펜하우어는 칸트와 헤겔의 허공과 틈새를 인간이란 피와 살로 채워 주었다는 것이 렌의 지론이다.


이처럼 스스로 셀프 철학자인 렌이 사는 원룸은 레지던스(residence)급의 고급이라 입주자들이 대개 격조가 높다. 몰고 다니는 차들도 국산이나 외제나 고급이 태반이다. 빈궁한 자들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서비스가 좋은 만큼 렌은 이곳이 너무나 좋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뭔지 모르게 친절하다. 조용하고 예의도 넘친다. 외국인들도 많이 상주(常住)한다. 그런지 인간들의 칼라가 넘친다. 갈색과 금발, 하얗게 붉은 피부 등으로 마치 엄청난 꿈속의 뉴욕으로 돈이 넘치는 맨해튼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마주치는 흑인소녀는 탱탱한 피부로 흑진주처럼 아름답다. 번잡한 도시의 인도에서 조우하는 미인들과는 또 다른 매혹이다. 상상 이상이다. 렌도 한때는 그랬다. 당시 10대의 렌은 너무나 깊게 아름다웠다. 미색이 서린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20대 후반까지도 극한 미소년이었다. 렌은 인간에 대한 결정적인 대우는 심성이 아니라 남아도는 물질의 질량에 대비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의 감성보다 미국의 뉴욕이 돈으로 더 좋아 보인다. 셀프 철학자답게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고급의 이런 원룸에 온 이후론 그걸 더 느낀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가장 좋은 것은 양아치들이 안 보였다. 그가 슈퍼에서 운반용인으로 일할 적에 주인의 권유로 계산대에서 이년 동안 일했다. 영리한 주인이 눈빛조차 미색인 그를 보고 렌의 자리를 계산대로 옮긴 것이다. 주인의 예상대로 첫 주부터 매상이 올라갔다. 슈퍼의 매상이 점점 더 서서히 은근히 그리고 꾸준히 올랐다. 주인은 즐거웠다.


먼저 렌은 앞의 종업원들과는 달리 돈을 훔쳐가지 않았다. 여기에서부터가 매상 상승의 원인이다. 거기에 대가 렌의 미색이 서린 매혹에 이끌려 근처 아줌마들이 손님들이 점점 더 오게 되었다. 어떨 때는 아줌마들의 키에 파묻혀 키가 작은 렌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개장은 일찍 하지만 오후 4시에 렌이 계산대에 선다. 그때부터 아줌마 손님들이 모인다. 렌은 소량의 물만 마시고 계산대에 선다.


그리곤 렌은 그 자리에서 불가사의한 더 없는 극미의 소년이 되어 미동도 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낸다. 계산 이외는 거의 말이 없는 렌이지만 매혹적인 눈매와 모든 부인들의 두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며 스쳐서 온몸에 스며드는 아련한 미소가 아줌마 손님들의 눈동자를 거쳐 지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은 주로 근처의 아줌마들과 이웃동네의 여자분들이었다. 계산대 앞의 렌의 모습은 호화로운 빈객의 자태를 가득히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프로골퍼 옆의 매혹의 캐디처럼 너무나 건강하고 눈이 저절로 가는 극도로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주인도 행복한 프로처럼 무지하게 기뻤다.


그래도 그가 받는 보수는 최저임금이었다. 인간에게도 동물처럼 등급이 있는지 매상이 훌쩍 올라도 매장주인은 늘 타산적이었다. 욕심이 앞서 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 말처럼 장사치들에겐 수입이 아무리 많아도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렌이 매상을 많이 올려주어도 렌은 하나의 일꾼일 뿐이었다. 그러한 것도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불가사의한 렌의 매혹적 미가 그렇게 온 슈퍼를 가득 채워주어도 머지않는 곳에 세워진 대형 마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렌도 주인도 서서히 다가오는 적자를 이기지 못해 그 자리를 미리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렌에게는 가방만 하나 남았다. 아름다운 소년치고는 너무나 측은한 모습이었다. 마치 남포동 번화가의 불타는 매장에서 자신의 옷가방 하나만을 황급히 달랑 들고 밖에 나와 구경꾼 사이에 서 있는 초라한 종업원 같았다. 주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잘 가란 말만 들어도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떠나야 하는 주인과도 말없는 이별이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님과 계산하는 아련한 렌의 모습이 미성(美聲)과 함께 그대로 그림자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 미소년 렌은 그 지역 어디에서도 안 보였다. 동네 아줌마들이 이리저리 근처에서 렌이 있을만한 슈퍼들을 찾아보아도 렌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사라진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렌이 안 보이는 것이다. 동네 아줌마들의 고독한 사랑의 대상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길 건너 카페에서 슈퍼를 보면 렌이 잘 보였다. 밤 10시가 되면 계산대 앞의 렌의 모습은 고독한 도시의 그림자가 되어 슈퍼 안 가득히 진하게 지쳐 보였다. 그러다가 밤 11시가 되면 스크린처럼 사라졌다. 주인이 슈퍼의 출입문을 차례대로 내리기 때문이다. 렌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도 외롭게 보여 건너편 카페에서 렌의 모습을 연모로 애무하는 아줌마들이 몇이 있었다.


그들만의 은밀한 약속으로 은근한 가슴속에서 렌은 불타는 연인이었다. 고약(孤弱)의 깊은 슬픔이 흘러내리는 가없는 매혹의 모습으로 그들 여인들이 너무나 안아보고 싶어 안달하는 고독한 심금의 미소년이었다. 카페의 사장도 야밤의 창에 비친 렌을 볼 적마다 프랑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고 매번 느끼고 있었다. 보통의 여성들에게 알맞게 키가 작은 렌은 나이 든 뭇 여성들이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품고 싶은 스크린 속의 미소년인 것이다. 꿈속에서도 아무리 포옹하고 더 깊이 파고들어도 풀 수 없는 극한 미로에서 이리저리 그녀들의 가슴에서 끝없이 헤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의 긴 고독의 표상인 것이다. 그런 렌이 바로 급하게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렌은 강원도 벽지의 고원에서 낙농장의 일꾼으로 돈을 꾸준히 모으고 있었다. 돈의 바람을 잘 타 코인과 주식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로 큰 부자가 된 것이다. 그곳에서 조용하게 말없이 이리저리 일하면서 코인과 주식에 꾸준히 돈을 몰아넣었다. 그는 바카라을 보고 저자들의 안내대로 주요 종목으로 긴 투자를 하여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농장의 깜깜한 밤의 전등불빛 아래에서 무조건 바카라을 보고 그대로 한 것이 전부이었다.


그러다 보니 벽지의 낙농장 저 멀리에서 펼쳐지던 골프장의 모습도 아련하다. TV에 나오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자주 오는 곳이다. 일하면서 멀리서 단체로 움직이는 갤러리 구경만 해도 너무나 평화스러운 골프장의 진풍경이었다. 아지랑이 물결이 렌의 마음을 적시었다. 그는 쉬지 않고 일했다. 여러 명의 몫을 시한에 맞추어 부지런히 아프지도 않고 빈틈없이 해 내었다.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다. 낙농장에서도 렌의 모습은 여전히 미소년으로 너무나 아름다워, 같이 일하는 가난한 여인에게서도 동정을 받을 만큼 일만 아는 고독한 소년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모르게 코인과 주식의 큰 부자로 점점 변신되고 있었다. 불가사의하게 매번 아름다움을 끝없이 다 발산하는 모습으로 너무나 고독해 보이지만 내실은 이미 알찬 작은 금융자산가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해양도시 부산에서 렌이 정착해 있다. 원룸에서도 그는 언제나 여전히 고독한 모습이다. 혼자 걸어가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모자도 깊숙이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깊게 가린다. 원룸의 종사자들이나 주인마저도 그의 모습을 온전히 알기가 어렵다. 그는 여행을 가질 않았다. 이미 수많은 곳과 거리를 영혼을 비우고 걸어왔다. 대신에 방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행인들을 보면서 맘에 드는 바카라의 독서로 소일한다. 컴퓨터도 잘 다룬다. 자판도 보지 않고도 잘 친다. 그의 컴퓨터는 화면부터 크고 최고급사양이다. 그걸로 아침에 오는 조간신문과는 또 다른 세상의 소식과 코인과 주식시세를 여유를 가지고 오후에 본다. 스마트 폰은 오는 벨도 없지만 가는 벨도 없다. 가득 충전하여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닌다. 길거리에서는 렌은 칸트를 줄곧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저술의 주요 내용들을 맘속으로 차례로 암송해 낸다. 그처럼 홀로 살아도 고독을 모르는 철인이었다.


수일 전에 바카라을 보다가 렌을 잠시 당혹게 한 장면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은사의 부인과 동침을 하는 것이다. 렌은 이해가 안 갔다. 몸을 고의로 허락한 은사의 부인도 부인이지만 그렇다고 알몸으로 은사가 사는 집의 침대에서 은사의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다니. 허구라도 이건 말도 안 되는 내용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묘사로 인간이란 존재를 그대로 통째로 부정하는 황망한 장면이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감정의 혼란』이다. 허구적 이야기라도 어떻게 이런 게 존립이 가능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꼭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나? 이런 자가 철학박사라고? 철학으로 이 자도 사기를 치고 있다. 렌은 그곳에서 정신적 길을 잠시 잃었다. 사유를 그대로 증발당한 것이다.


더 이상의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렌에게는 여자라는 잔상이 없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것을 지웠다. 그때 그는 아마도 여자마저 지운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어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나 힘들고 위험해 모든 것을 멀리 하고자 그때 알고 있었던 모든 기억을 동시에 다 지운 것이다. 그리곤 어린 나이에 불멸의 영혼을 너무나도 일찍 홀로 가지게 된 것이다. 신(神)에 의하여 태생적으로 극히 아름다운 소년이 어쩌다 목숨을 더 부지하기 위해 가련하게 그나마 가진 모든 것을 한 날 한 시에 다 버리고 만 것이었다. 실로 불쌍하고도 불쌍한, 신(神)도 예측하지 못한 영혼의 살인이었다.


그의 바카라상 위 커피 잔 옆에는 파르메니데스의 바카라이 보인다. 그 표지 위에서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상념이 얼른거린다. 비유비무는 이 세상에서 렌만이 그대로 온전히 이해할 것 같다. 이 비유비무는 렌의 사념에서 표징이 되어 오래전에 그의 사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진하게 나타난 것이다. 그 표징이 셀프 철학자인 렌의 정신적 주춧돌인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사유의 초석으로 렌의 가슴에서 안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내일 오전까지 비가 온다니 다행이다. 그때까지 잠을 청하면서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는 자면서도 제법 많은 생각을 한다. 원룸에서 그를 깨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고급 원룸이라도 그는 혼자서만 잔다. 자신도 모르게 점점 높아가는 코인과 주식가치와 함께 사유로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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