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09
2001년은 내가 처음으로 파라파라를 접한 해인 동시에, 처음으로 유로비트라는 음악을 제대로 들은 해이기도 하다.
당시에 PC통신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 중 하나였다. 그때 내가 PC통신을 통해서 주로 들었던 음악은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이니셜 D’라는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을 발견했다. 나는 이니셜 D가 어떤 애니메이션인지 전혀 몰랐지만, 다운로드 수가 많은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들어 보기로 했다.
첫 트랙의 도입부부터 내 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자음, 멜로디, 보컬. 모든 것이 내 취향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았다. 곡 제목은 Space Boy, 가수 이름은 데이브 로저스(Dave Rodgers)였다. 앨범에는 그 외에도 십여 개의 곡이 있었다. 가수는 저마다 달랐지만 곡의 분위기와 사운드는 서로 비슷했다.
나는 이 앨범을 CD로 구워서 가지고 다니며 자주 들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평일에는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밤 9시 20분까지 학교에 있어야 했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고 별로 자율적이지 않은 야간자율학습으로 지쳐갈 때 이 앨범을 들으면 기운이 났다. 이런 종류의 음악을 유로비트라고 부르며, 파라파라가 유로비트에 맞춰 추는 춤이라는 것을 PC통신 어디선가 알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드디어, 초등학생 때부터 기억해 뒀던 아무로 나미에의 ‘태양의 시즌’도 PC통신에서 찾아냈다. 이 곡도 마찬가지로 유로비트였다. 나는 뮤직비디오를 다운로드해서 보고 또 봤다. 곡뿐만이 아니라 퍼포먼스도 아주 멋졌다. 파라파라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춤이었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유로비트 사운드에 아주 잘 어울렸다.
아마 ‘태양의 시즌’의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올려놓은 사람이 곡에 대한 정보도 함께 올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프로듀서의 이름이 낯익었다. 이니셜 D 사운드트랙의 첫 곡 Space Boy를 부른 데이브 로저스였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이름을 다시 보게 되다니 신기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유로비트 가수이면서 가끔 곡 제작에도 참여하는 사람인가 보다,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된 후 직접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아무로 나미에는 다른 유로비트 곡들도 여러 개 리메이크했고 나는 그 곡들도 자주 들었다. 다만 당시에는 유로비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영어로 된 유로비트 곡들이 원곡이고 아무로 나미에의 곡이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반대로 아무로 나미에 쪽이 원곡이고, 나중에 리듬게임 등에 사용하기 위해서 영어 리메이크가 나온 것이라고 완전히 오해했다.
PC통신에서 ‘유로비트’로 검색을 했더니 유로비트 컴필레이션 앨범도 하나 나왔다. Super Eurobeat Vol. 120이라고 제목에 쓰여 있었다. Super Eurobeat는 세계 최장수 유로비트 컴필레이션 시리즈이고 120이라는 숫자는 실제로 120번째 앨범, 즉 120집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물론 그런 사실은 잘 몰랐고, 그저 들어 봤더니 좋기에 계속 듣게 됐다. 나는 이런 식으로 천천히 유로비트를 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