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나를 걷다

길 위에서 배우는 삶

by이병희


백두대간 나를 걷다(7-8구간)
복성이재~봉화산~중재(1박)~백운산~영취산~깃대봉~육십령

복성이재에 서면 길은 늘 두 방향을 내어주지만 몸은 하나뿐이라 결국 선택은 발이한다
이른 아침 복성이재를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이어지는 능선의 이름들은 낮고 부드러워 보였지만,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봉화산으로 향하는 초입은 완만하지만 완만함은 산이 내어주는 배려라기보다 앞으로의 호흡을 점검하라는 신호에 가깝다고 말하고싶다
바람은 먼저 능선을 타고 흐르고, 우리는 말수가 적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행이 깊어질수록 대화는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으며, 그 뒤를 천천히 호흡을 맞춘다

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날의 산은 매번 다른 얼굴을 내밀고있다
능선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며, 마치 내가 산행기를 쓰듯 하나의 문장처럼 읽히며, 내가 밟아온 길과 아직 남아 있는 길이 한 화면에 포개질때 산은 비로소 "거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다가오고, 봉화산에 오르니 멀리 이어지 대간의 등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굽이치는 능선은 마치 내가 지나온 시간의 단면처럼 겹겹히 쌓여있다

중재로 향하는 길은 길다기보다 깊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나의 생각도 길게 만들고 있다
발걸음은 일정한데 그 안에 담기는 생각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나는 또 한번 묻고있다, 무엇을 위해 걷고 있는지 묻지 않게 되는 순간 비로소 걷는 일 차체가 목적이 되었음을.......

중재에서의 하룻밤, 산중의 밤은 도시보다 조용하지만 내 안의 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작은 숨결 하나에도 귀 기울이게 되는 시간, 도시에서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이 이곳에서는 크게 울리는 느낌,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으며, 그 속에서 나는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덜어내고있다

다음날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길, 밤을 건너온 몸은 무겁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더 가벼워진다
분명 피로를 안고 있지만 마음은 전날보다 덜 복잡함은, 산은 쉼을 주지 않았지만 대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있었기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능선위의 바람은 어제보다 더 선명하, 단단한 침묵을 알려주었다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바람은 다시 말을 건다
우리는 속도를 줄이고 호흡을 맞추고 한걸음씩 옮기며, 반복 속에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어떻게 걷고 있는가만 남는구간이다


깃대봉을 지나며, 또 한번 깨닫게 된다
산의 이름은 방향이 되고 능선의 길은 이유가 되는 것처럼 나를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은 리듬이었다는 것을 산은 이유를 묻지 않지만, 대신 꾸준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데려가는 것은 이름도 이유도 아닌, 한 걸음씩 이어지는 나의 의지였다

육십령에 닿았을 때, 이번 구간은 높이를 넘는 여정이 아니라, 밀도를 채우는 시간으로 빠르게 지나갈 수 없는 길, 그래서 더 또렷하게 남는 구간으로 기억된다
백두대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또 한 번 그 위를 지날것이며, 이 길은 산을 넘기 위한 길이 아니라, 나를 통과시키는 대간의 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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