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다큐멘터리
그때도 그 이전에도 항상 거기 있는 그곳에 다르게 오는 건 만났던 사람들이 다르고 보냈던 시간들이 겹겹 다른 두께라 그렇다.
이제는 더 이상 그때 내가 아니야.
불 밝은 곳에는 언제나 소음이 짙고 사람들은 부딪히고 소리 내고 스치고 움직인다.
새벽의 소란을 지나 세상 깊숙이 들어가고 있으니 긴장하라고 긴장하려고.
하나의 언어로부터 오는 소리의 겹들이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언어로 거대한 부피가 된다.
엉거주춤 일어나 덜 밝은 곳으로 뒷걸음 하며 매번 밀려나고 떨려나고 기다려야만 했던 기억을 올린다.
물 병을 들고 테이블 위에 펼쳐 두었던 블루투스 자판과 주황색 리넨 파우치를 한 손에 챙기다 충전기 헤드를 떨어뜨린 굉음에 귀가 떨어져 나간다.
거봐라 너도.
피하고 싶은 순간이 내 몸에 묻어있다는 걸 알아채며 부끄러운 삶의 속살이 드러나 따갑다.
가을이다. 걷다가 서성거리다가 다시 조금씩 걷는다. 그래요. 그랬던 약속을 지키러 간다.
숲에 들었다가 바다 앞에서 문득 낯선 설움이 온다. 모두 혼자 했던 일이므로 마무리도 알아서. 누군가 조금은 옆에서 거들어 주면 좋겠다 하다가도. 주먹을 쥔다. 괜찮다.
들어선 카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가득 차 회색 안개 같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오밀조밀한 미소가 한쪽으로 쏠린 보리 쿠키를 한참 구경했다. 약속에 선물을 더한다.
하나만 먹고 싶은데 낱개는 팔지 않는다. 되지도 않는 애교를 어색하게 시도해 보고. 청년은 닥종이 인형처럼 생겼다. 만화처럼 단칼. 쓴맛을 보고도 작은 카페 구석에 진열되어 있던 작은 소품 파우치를 샀다. 각진 종이 상자보다 천 파우치에 들어있는 쿠키가 더 행복해 보여서.
쿠키를 테이블에 모두 쏟아 파우치에 다시 포장하다 받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일회용이 아니기를 바라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괜히 숙연해진다. 한 번이라도 더 쓰이기를.
쿠키 박스와 종이백을 다시 청년에게 가져다주었다. 잠깐만요. 안으로 들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앞모습으로 돌아 나온다.
만들다 불량이 된 쿠키 두 개에는 구석으로 찌그러지고 금이 간 쿠키의 미소가 수줍다.
새 거랑 다른 거예요.
그러네요 달라요,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커피를 주문하며 낱개 쿠키를 먹고 싶어 하던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데 감동한 건가.
보살핌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느낌이 올 때마다 어딘가 숨으려다 손바닥 안에 숨어버렸나 혼자 더 쑥스럽고 낯설다.
이제 일어나면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도 이 닥종이 인형 청년이 나를 알아봐 주고 불량 쿠키를 또 주면 좋겠다.
어느 드라이브 중 들른 카페에서 익숙하지 않은 추억 하나 만들고 간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