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예민하게
그곳에 가는 이유는 있다, 그러다 없는 것도 같다. 있어서 하는 것은 의무 같고 없어서 하는 것은 해방이다. 언제나 받아주는 곳을 향한다.
사람이 향하는 곳과 자연이 머무는 곳은 시간이 다르고 질감이 다르다. 그 중용의 균형을 다잡으러 다시 떠난다.
흐린 땅을 밟고 눅눅한 공기를 휘젓는다. 눈을 찌르는 쨍한 햇빛보다 가라앉은 회색이 편하다. 다른 온도의 나이테를 자랑하는 껑충한 나무들이 반갑다.
툭툭 내리는 비를 받으며 달린다. 사선으로 지나가는 잔 물줄기에 겉부터 달라질 온도를 상상한다. 속으로의 열기와 바깥의 차가운 기운이 서로 엉키며 새로운 시간이 열릴 것이다.
온몸을 열고 세포를 부채질해서 산 기운을 모두 받고 욕심쟁이가 되기로 한다. 안개가 달아나고 비가 마르고 바람이 순해지고 구름이 온다.
데크에 걸린 자연의 징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된다. 초가을 마른 나뭇잎들이 손목을 긁고 지나가며 이대로도 괜찮다 한다.
지금이래도 좋다. 어제여도 상관없을 현재의 바람들이 시간을 잊고 성큼성큼 앞으로 간다. 굳이 가르지 않아도 될 많은 부대낌들이 다른 감성으로 들이쳤다가 다시 가쁘게 떠난다. 그래서 바람이 거센 산이 좋다.
산에 다녀오면 얼마간 앓는다. 정신은 더 말짱한데 몸의 구석구석을 따라 전율처럼 바쁜 기운, 거칠게 훑으며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통증들, 신내림이 아닌 산내림의 시간에는 발바닥으로 흐르는 붉은 메아리를 읽는다. 아프다. 세상은 더 하고 사람은 말할 수 없이 더 그렇다. 그래서 살만한 우연들이다.
산을 다녀와 산자의 모습이 된다. 가장 가까이 느끼는 심장의 몸부림과 데워진 혹독함을 호흡하면서 내 삶을 제대로 내놓으라 목놓는다.
그 꼭대기라 붙여둔 나무 팻말 위에는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욕망이 나부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