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해지지 않는 무뎌지지 않는
어떤 영화를 보고 쓰디쓰다 못해 끈적해진 침을 뱉지도 못하고 우물거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가을 공기는 찬란하고 나뭇잎은 서로를 부비며 집착하며 바쁘다
무심하게 올려둔 손도 발도 기계의 틈바구니에서 명령어를 따른다 핸들을 꼭 잡으세요 깜짝이야
세상의 결에 대해 울컥하는 날 실상은 좁은 공간 한 구석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소통이라는 판타지를 잊으려 눕는다
지난 일주일간 마주 보았던 눈동자들을 세본다 한 쌍이거나 한쪽이거나 없었거나 외면하거나 인정이나 거절이 찰나의 눈빛에 가득하다
영화를 보거나 바카라을 읽거나 거리를 걷거나 지독하게 뭉그러진 은행알을 거칠게 느끼거나 휘청이다 가로수에 기대거나 감각의 폭풍은 심장으로 스며든다
눈물이 구토와 같이 나는 날에는 코를 막는다 기억된 향기 악취와 함께 너울거리는 상한 비위를 가늘게 채를 치는 우두커니 멍한 영혼이 가엽다
바람이 정하는 낙엽의 각도에 내 비뚠 마음의 각을 대본다 그런 게 세상이지 단 곳으로만 코가 길어지고 주둥이가 커지는 맹신, 그런 냄새들
나를 갈라 세 등분쯤으로 사는 것도 좋아 그러면 어때 하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혼자 갈라 두고 분류하는 시간이 즐겁기도 하고 호러기도 하고
이성과 감성과 픽션의 판타지가 한 몸으로 뒹군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지 그러니 파이차트를 세 조각으로 가르는 칼날이 그리운 날이다
메타포를 사랑하는 그에게 줄 한 조각 현실의 통증에 익숙한 너에게 다른 한 조각 마음을 깊이 묻고 몰래 살다 폭발하곤 하는 나에게 나머지 한 조각 그와 너와 내가 동그란 파이차트로 산다
살아온 궤적만큼만 사는 답답함과 남겨둔 후회만큼만 뉘우치는 오만함과 더 뚫을 수 없는 네모난 가장자리를 씹으며 탈주를 기대하는 날
무한한 다각의 동그라미 안에서 몸부림치는 그런 날에는 감수분열減數分裂로 하나씩 나를 줄이며 소멸하는, 세상은 복제하고 나는 분열하고 휘발하고 몸도 마음도 샅샅이 야곰야곰 곰곰 정신도
나는
파이 한 조각
그다음 한 조각
그리고 나머지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