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집 아이들

천진하고 순수하고 두려운

by서희복

냉장실 냉동실 넣어둔 음식을 박스에 차곡차곡 정리해,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안기고 돌아온다.


명절 다음 날 식당이 붐빈다. 횟집도 분식집도 짬뽕집도 와글바글 주문 소리가 엉킨다.


오롯하고 편안한 취기가 그리워 짬뽕집을 휙 지나쳤다가 뒷걸음질로 돌아와 구석에 앉는다.


다른 때처럼 비슷한 시간인데 주인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손님들 북새통에 주인아저씨 눈만 이리저리 굴리며 분주하다.


목소리 땅땅한 아주머니가 있었으면 그거 드려? 끄덕끄덕에 너무 이른 거 아뉴? 문어짬뽕 국물과 고량주를 탁 소리 나게 올려두고 무심히 돌아설 텐데.


주인아저씨 목맨듯한 탁한 소리에 작은 여자아이가 허겁지겁 웃으며 단무지와 생양파를 탁자에 올려두고 간다.


주인아주머니는 명절 후유증에 몸살 났을지도.


기껏해야 중1쯤 보이는 아이에게 술을 주문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노란 단무지에 식초만 그득하게 붓는다. 작게 용기를 낸다.

메뉴판 주류가 적힌 곳 다섯 번째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중간걸로 하나, 소심하다.


때마침 키 큰 남자아이가 짬뽕집 중1쯤의 여자 아이에게 착 붙으며 뭐라니? 묻는가 보다.


냉장고를 열고 둘이서 한참을 두리번댄다. 바로 코앞 납작하고 날씬하게 한자어가 적힌 병을 지나 뭐야? 뭐여? 투명한 유리의 냉장실 공간 안으로 당황이 휘돈다. 이거. 내가 얼른 일어나 다가가 집어든 병에 두 아이 얼굴은 천국이 된다.

아직 앳된 아이들, 오빠로 보이는 아이도 중2나 중3쯤, 어머니의 짬뽕집 홀 서빙 부재를 두 아이가 채운다.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둘을 모두 더해도 엄마보다 미숙한데 몸으로 삶을 배우고 있다.

다른 손님들도 나와 마찬가지라 접대용 웃음이 잘 안 되는 아이들을 부르지 않는다.


벌떡 벌컥 일어나 자기 그릇은 자기가, 단무지 리필도 스스로, 다 먹은 그릇까지 곱게 쌓아, 들고 가기 쉽게 정리한다.


아이의 손가락 끝이 살짝 닿은 짬뽕 국물이 짠기를 더했으려나 조용히 한 스푼에 목이 칼칼하다.


명절 후유증이 그득한 명절 음식은 구석으로 밀어 두고 누구도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시골 작은 짬뽕집으로 삼삼오오 몰려온다.

손님이 많아지고 문 앞 대기 의자가 모두 찰 즈음 짬뽕집주인아주머니가 이마에 굵은 주름을 얹고 들어온다. 학원 가라.


설익은 웃음의 여자 아이도 심각한 표정의 남자아이도 주방 옆 긴 통로 끝에서 가방을 메고 나온다. 서빙할 때 얼굴에 걸었던 친절용 웃음이 싹 걷히고 작은 한숨이 몰래 지나간다.

만일 나의 부모님이 짬뽕집을 하고 추석 명절날 강제 노동하다가 학원으로 내몰리면 나는?


학원 땡땡이치고 강가로 뛰어가 둑방에 앉아 오리 구경을 할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벌렁 드러누워 구름을 따가 다니다가 짐이 들겠지. 아마도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