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는 듯 흔들리는*

[영화] 가능한 사랑 Possible Love, 이창동 감독, 2026

by서희복

꺼지는 듯 흔들리는 도시의 가로등

......

가슴을 태운 이 어둠의 상심

허무한 사연 이어라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는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가끔 흥얼거리다가 오래 잊어버렸다가 영화 '가능한 사랑'을 보고 다시 웅얼댄다.


이념적 클리셰 퍼즐 사이를 큰 여배우가 분주히 메꾸며 꿰맨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회색 주름 사이의 감정을 누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2시간 44분, 그렇게 촘촘 설명하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이래서 아팠다, 저래서 상처받았다, 그건 유혹한 거다, 아니 유혹이 아니라 경멸하기 위한 덫이었다. Zo는 AI였다 거나 호루라기를 불면 뛰어왔던 그가 AI 일수도 있다거나, 그래 그럴 수도. 노동의 우산을 쓰고 노조의 우산살을 고치며 고작 받아낸 건 녹슨 살만 덩그러니 비가 들이치는 뼈대다. 앙상한 철심 사이로 꽂히는 비를, 그 피를 대체 어쩌란 말인가. 상상에 맡겨도 되는 거다.

졸졸졸 풀풀풀 구시렁구시렁 상세하게 알려준다. 순간마다 예상이 들어 맞고 시간마다 소리가 연결된다. 바다는 그녀를 너울거리게 하고 출렁대는 파도를 따라 사냥꾼이 멀어진다. 다 잡은 손목을 고함 소리에 내주고 비루한 욕망의 발기는 방향을 튼다. 위선의 골짜기에는 비릿한 변명이 찌꺼기로 쌓인다.


나뭇잎 사이 햇빛에 순수했던 표정이, 길고 길다라 화면에 다 잡히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몸뚱이와 따로 갈라질 때 나는 알아봤다, 그자의 천박한 본성을. 어떻게든 배설해야 하는 비굴한 욕망을.

보이지 않게 깨닫고 싶은 깊은 메타포보다 보이게 걸어 두고도 다시 제목을 달고 그 아래 상세하게 해설이 긴 시간의 낭비, 공간의 비효율을 목격한다. 정치적 의도가 쉽게 간파되고 슬롯적 빈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감독이 탔다는 트로피 위에 빽빽하게 앉아 있다.


여러 개의 이름을 읽고 들어 갔다가 한 두 개의 그림만 가지고 나온다. 아이가 끊임없이 불어 댈 호루라기가 원하는 사람을 부를 때, 하고 싶은 것을 말할 때, 소리의 날카로움이 힘이라는 것, 그리고 폭력이라는 것을 알아낼 때, 어떻게 자랄지 신경이 쓰였다. 어른들이 사소하게 보는 장애의 징후들이 오히려 '정의'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고 받은 상처는 개인의 몫이다. 곁에 누가 머무는가가 남은 상처의 회복 가능성을 정한다. 빈 가슴 옆의 그녀와 다른 욕망을 가진 그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예술적 농밀함과 밀도 있는 서사 연결을 기대하고 들어간 곳에 거대하고 칠흑 같은 허무한 사연이 둥둥 떠 있다.



*: 도시의 그림자의 노래, '이 어둠에 이 슬픔' 첫 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