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운 말 다운 사람다운 세상을 디디러
내 탓이오 가슴을 두드리며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곳에서 다시 두레박을 올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내 가슴이 너무 움푹했던 탓이다. 신발이 너무 가벼워서 어디로 가는 줄 모르고 내달았던 길, 이제 멈춘다.
텍스트 중독자로서의 잦은 전율이 눈을 가리고 그저 앞으로만 가라며 떠밀었다는 것도 모두 변명이다. 텍스트 위에 진심도 위로도 공감도, 그리고 위선도 가식도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텍스트를 벗어나서야 깨닫는다. 온 길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글자락의 끝을 놓을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 한탄한다. 글은 그 안의 온도는 그 온도를 품은 이야기는 삶이 되고 아픔이 된다.
권태의 시작에서 벽을 뚫어보려 두드려도 보고 찔러도 보고 노려 보기도 했지만 병들어 곪은 자리에 묻혀 안일했음도 묻어둔다. 어른의 퇴행, 그 시간들을 바라만 보기에 많이 아프다. 카페디엠과 메멘토모리 사이에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사람다운 말을 하고 말이 담은 글을 쓴다.
말이 시작되는 곳에서 질문할 것들이 많았다. 글에서 마주친 사람으로부터 온 말의 무게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분별력을 놓아버린 시간들을 쓸어 담는다. 사는 방식은 말보다 더 낮아져 현실이 되고 누덕누덕 쌓인 말들이 고물이 된다. 소각할 찌꺼기를 보며 오래 머물렀다.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구겨지고 보이는 통증으로 앓던 그곳을 이제 지나간다.
차분해지고 선명해지는 글 같은 말이 좋다.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말 같은 글이 좋다. 절벽 아래만을 바라보며 갈증 하던 시간이 나와 같은 높이에서 살아가는 가치에 눈을 돌리게 한다. 말은 본성을 보여주고 글은 보이도록 쓰인다. 즉각적인 글자 하나로도 첫인상이 정해지고 잘 다듬어 쓴 단어 속에 의도가 도드라진다.
눈을 마주치고 호기심을 던지고 귀를 크게 만들어 흠뻑 듣고 맞장구치며 사람을 알아간다. 하고픈 말속에 마음이 산다. 쓰고픈 글 속에 이념이 산다. 심장을 담은 말이 짜깁기한 감성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 길이가 다른 줄 알면서도 쉽게 무시했던 서로의 영역들, 자라난 타성들, 이제 돌아서 나다운, 아름다운 그곳으로 간다.
써 내린 글처럼 살아가는 곳, 살아가는 향기로 말하는 곳, 풍성하게 공감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매일 일어나는 거다. 피로하게 투명하게* 내몰리느라 가까이 보지 못한 시간을 위로한다. 이기와 경쟁, 숫자에 말려들어가는 곳에서 멀어질수록 순수한 자신이 된다. 글과 말과 삶이 회전하는 세상의 바퀴가 고른 간격이었으면 좋겠다. 그 톱니바퀴들이 바르게 굴러가는 사람이기를 내게 바란다.
*: 한병철 (피로슬롯, 2010; 투명슬롯, 2012),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