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가능한 틈이 많을수록 오래 머무는
영화든 소설이든 단편을 읽고 나면 오래 조용히 따라오는 그림자나 뭔가 미진하여 불투명하게 머무는 것을 즐긴다.
어떤 영화는 죽음이 실패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 죽지 말고 잘 살아야지 하고 끝낸다. 나도 더 잘살아야지 기운내고 싶은데 잘 살아야 하는 건 저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만 해당한다. 영화는 질문을 던지면 된다, 답을 던지지 말고.
투고를 준비한다는 한 작가가 다소곳이 원고 뭉치를 테이블에 두고 갔다. 투명한 집게로 잘 꽂혀 실버 스틸 테이블에 놓여 있는 종이 두께가 묵직해 보였다.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말을 괜히 했나 겁이 났지만 기쁜 마음이 더 크다.
재빨리 1 회독을 하고 어! 하며 덮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관계 사이에 자리 잡은 시간적 공간적 갈등이 어울거린다. 그들의 층위와 깊이가 드러나는 순간에 탄산의 기포가 바쁘게 머리를 휘젓는 것 같았다. 단순과 복잡성의 사이의 얇은 막들, 그 사이를 오가는 시선과 못다 한 말들, 그리고 현재성의 중심에서 관계하는 것들이 촘촘하게 놓여 있었다. 갈등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깨우침을 준다. 요란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이 더 뜨거운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문서를 열어 1 회독이 남긴 것들을 메모했다. 간격이 다른 언어적 뉘앙스가 아직은 다소 거칠고 가시적인 틀에 걸려 있다. 30대 초보 작가라는데 짧은 독립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어서인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묘사와 장면의 이미지화가 구체적이다. 인물들 사이 다가오는 속도와 고개나 몸짓을 하는 찰나가 머릿속에 그려져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출간작가도 아니고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지만, 읽고 느끼고 이야기하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읽고 싶다 한 것이었고 그런 나의 무모한 순수를 믿고 원고를 읽도록 허락한 것이다. 전문가의 평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 독자로서 어떻게 공감하고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2 회독을 앞두고 1 회독에 대한 독자로서의 이해와 느낌, 질문들을 적어 나갔다. 2 회독에서는 아름답게 구조화되는 세밀한 대화들을 더 들여다볼 작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의 잔잔한 슬픔과 결핍을 글로 잘 옮기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수많은 질문들이, 안타까움이 남았노라고 전할 것이다.
글을 읽고 나면, 특히 단편일수록 몇 가지의 색깔들이 어우러져 남는다. 어떤 겹쳐진 부분의 농도에 따른 감정의 진폭을 알아보고 거의 채색이 되지 않은 부분의 허무를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굳이 무언가를 두지 않아도 아주 천천히 스스로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비워 두어도 좋으리라.
인간의 적응과 공허, 아무리 완벽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거친 공백 같은 지금, 날 것의 질감 그대로를 읽으며 가슴으로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