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말의 색깔
관리인이 내게 어디 가는지 혼자 가는지 묻고는 한참을 서 있었다. 거기 힘든데.
7킬로의 돌길을 걸어야 하는 한라산 돈내코 숲길은 힘들어도 살아내야 하는 삶과 같은 곳이다.
여름의 빨강을 피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타는 듯한 색깔 그 열기에 반격당한 두통은 약도 없다. 고개를 들자마자 오그라들고 있었다. 태양은 나를 태워 죽일 작정이다.
도시는 맑고 숲은 습하다.
볼 때마다 검은 아가리라는 말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발 들이기 전까지 딱 두렵다. 저곳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런다.
숲에는 빛이 있고 초록이 있고 바람이 있다. 촘촘한 나무가 있으면 깊어지고 있다는 거다.
노루 두 마리가 무심히 바라본다. 작은 사람이 움직이니 구경한다. 천천히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니 빠르게 달아난다. 저 경쾌한 달음박질을 배우고 싶다. 저기 어디에선가 부스럭거린다. 그들의 눈이 내 허리쯤에 박혔을까? 빨간 리본이 지어둔 경계를 넘어가지는 않는다. 노루는 경계 밖에 사람은 경계 안에.
큰 나무는 빛을 안고 어쩔 줄을 모른다. 다시 내게 비춰주고는 부끄럽다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비추지 않는다. 자신의 빛만 비추려는 이기심 속에 나무는 지나가는 나를 눈부시게 비춘다. 반사된 눈물을 두고 간다.
저기 어디 소금쟁이가 달아나고 있다. 미끄러지는 긴 다리를 잡아서 물 위에 묶어 두었다. 볼 때마다 신기한 동물이다. 얼지도 않은 물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구름이 가린 남벽에 가고 있다. 백록담보다 남벽을 더 좋아한다. 백록담은 감싸는 벽이 갈라져 물이 고이지 않는다. 남벽은 계속 깨지고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백록담을 지탱하려 애쓰고 있다.
남벽이 온전히 왔다. 구름을 보내고 무너진 상처를 보여주면서도 가장 꼭대기에는 작은 물웅덩이만 덩그런 백록담을 안고 있다. 사람들은 백록담 앞에서 사진 찍으려 긴 줄을 서고 나는 남벽을 보러 여름 태양과 맞선다.
돌아오는 길에 뒤돌아 본 남벽이 구름을 덮는다.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남벽은 항상 길을 내준다. 그래서 거기에 간다.
하늘이 덮인 곳의 바위길은 초록이다. 하늘이 열리면 깡깡 말라 진한 회색이 되고 건조해지면 검게 말라 미끄러지지 않는다. 이끼 낀 돌은 구르지 않는다. 뼈가 있는 동물의 관절을 비튼다. 사뿐사뿐 눈치 보며 디딘다.
숲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널브러진 죽은 나무들이 멧돼지로 보인다. 빛이 무거워지는 5시 이전에는 벗어나야 한다. 멧돼지를 만나면 어떡할까 생각은 하지만 그건 그때 가봐야겠다.
검은 숲의 입구를 빠져나오면 인간 세상이 회색이다. 떠 있는 섬들도 손님 접대에 바쁘다. 서귀포의 태양은 오전이나 오후나 후텁하다.
오늘은 도시를 피해 이끼긴 돌들을 밟으며 살 궁리를 한다. 숨이 턱을 넘길 듯한 세 시간 반과 이끼 낀 돌과 사투를 벌인 나의 무릎 관절이 견딘 세 시간을 합한 여섯 시간 반 동안의 긴박한 통증이 얼마간은 나와 함께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