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禁도 단斷도 가당치 않은

빈자리, 다른 색깔들

by서희복

절제할 것인지 끊을 것인지 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어정쩡하다. 보이는 글자의 명확성은 삶을 우롱한다. 글은 다짐을 다짐하는 고집이다. 말의 투명성이나 휘발성이 더 설득적이다. 더 예측 가능한 그라데이션이다.

금주禁酒할 것인가 단주斷酒할 것인가. 욕망으로 가두어 둘 것인가 완전히 자신으로부터 끊어낼 것인가 글로 써두고 보니 꽤 그럴싸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가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분명 예, 아니오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금禁이나 단斷이나 비우겠다는 의지다. 자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금옆에 서 있거나 단을 높여 불가능의 확률에 기대는 거다. 비웠다고 생각하는 자리에는 내가 끌고 온 사건의 흔적들이 너저분하다. 그 얼룩마저 기억나지 않는 비움이 가당키나 할까.


욕망에서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뒤돌아 보는 순간 코 앞에 들이닥친 후텁함이 지나온 길을 흔든다. 예민한 감성일수록 걸음을 돌리기가 힘들다. 영화 속의 군상들이 욕망에 무너지고 구걸하고 버려진다. 자극이 큰 만큼 빈자리의 얼룩도 짙다.

완전히 끊을 수 있는가. 술도 담배도 관계도 위태로운 반전을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다시 술잔을 들게 된 건. 그건 얼마간의 중지된 욕망, 세상에 끊을 수 있는 건 없다. 잠시의 부재로 위안하는 것, 그 부재의 다른 농도, 금단禁斷,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한 번이라도 언젠가는. 그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달리다가 차를 갓길에 세운 날, 이건 아니야, 그렇게 돌아와 버린 시간으로부터 사천번이 넘는 밤이 지나고도 여전히 금禁도 아니고 단斷도 아니고, 가끔 예술면에 소식이 올라오는 그 이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가슴은 여전히 길을 잃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를 바랐던 날들 안에는 억눌러야 할, 고상하게는 절제가 마땅한 순간들이 촘촘하고, 완전하게 단절했노라 마음먹었던 것들이 추억이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불쑥불쑥 나타나면, 세상에 떠다니는 언어들이 품지 못하는 그것들을 어디서 폐기해야 할지 막막하다.


긍정이 익숙한 가슴으로 품어야 할 금禁, 단斷의 부정이 길들여질 리 없다. 눌러야 할 욕망이 있는 곳에서 더 무거운 에너지가 들고, 끊어야 할 길 앞에서 더 세차게 휘청인다. 당위 속에 발을 딛고도 우연과 반전의 요행을 심하게 바라는 건 아닌지, 그런 저런 모순을 삶이라 덮어두고 싶지만 자신조차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술도 담배도 관계도 금해라, 끊어라 말하는 건 쉽다. 다짐도 멋지다. 하지만 끊임없이 견뎌내야 할 금단증상은 깊고 고되다.


욕망을 밟고 금禁에서 멀어지고 있는지, 끊어야 하는 압박을 견디며 단斷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도대체 어디쯤에 서 있는지 알길은 없다. 넘을 수 있을지. 그저 걷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