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세상이 있어

한 사람을 구하면 세상을 구하는 것

by서희복

어디서 보았는지 들었는지 또렷한 문장, 한 사람이 세상이라는 것을.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저 사람이 오늘 나의 세상 전체라는 것을, 마주할 세상을 예견하는 것임을 안다.


두 시간도 넘게 약속 시간이 남았는데 흥분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서성인다. 빨간 가방을 꺼냈다가 무지 에코백을 만지작 거리다가 정하지 못한 가방은 잠시 미루고 가져갈 소지품을 챙긴다. 바카라과 펜과 티켓, 선글라스, 모자, 오늘은 빨간 가방에 청바지를 거울 앞에 대본다.


오프라인의 스킨십이 피부가 맞닿아야 하는 건 아니다. 서로를 향해 준비하는 동안 천천히 체온이 올라간다. 피부가 상기되고 허파가 기쁘게 불룩거리고 심장 소리가 바빠지며 세포를 깨운다. 이 한 사람을 마주하려고 밤은 깊어지고 새벽은 천천히 뜸을 들인다. 준비만으로 영원해도 좋을 시간이다.


혼자서는 다 못 볼 세상이다. 타인이 가져온 삶이 우연히 다가와 뒹군다. 사소한 흔적들이 별이 되고 빛이 되고. 마주 보고 들어주고 잡아주고 기대보고.


비상등을 켠다. 도착했노라 톡을 한다. 기다림이 짧아질 그 방향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간다. 내게 오는 그 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반듯하게 만들어야지 벅차다. 보이지 않았던 공간에 홀연히 나타나, 다가오는 길은 반으로 줄고, 다시 그 반으로, 그리고 다시, 그렇게 무한대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커피 향에 기웃거리며, 얼음이 어떤 모양인지, 거품이 얼마나 우아한지, 생크림의 높이만큼 달콤하게 웃는다.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속닥거리고, 다가올 기쁜 장소에서 어떻게 서 있을지, 무슨 말을 할지, 그런 시시콜콜 안에서 기껍다. 나의 치즈 치아바타 한쪽이 건너간 곳에 알리오 올리오가 부끄럽게 건너온다.


커피 마시는 모습으로, 향을 즐기는 표정으로, 행복해하는 숨소리로, 오늘을 기억해 둔다. 파스타 위에 다소곳한 마늘을 포크에 올려 건강에 좋으니 먹어보라며 눈을 마주친다. 오래 가물었던 사람처럼 부끄럽다.


끈적한 이별,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일은 더 나은 사람으로 일어나야지.




집에 도착해서야 열어본 스마트폰에는 광고들, 연락들, 뉴스들, 그리고 유혹의 링크들, 종종 오는 라이킷, 그런 분주함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 오래 박혀 있다가 댓글을 남겼다. 차분히 혼자 해도 좋은 것들을 혼자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오늘 내가 만나 살고 온 세상이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