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부피로 떠 도는 시간, flow
루틴의 자각으로부터 어느 순간 미끄럼틀을 타고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건너온 것이 분명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알아보고 어느 공간에 머물렀는지 인식하기 시작하는 낯선 당황이 좋다.
세탁기로부터 울렸을 끝 음악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느 시간이 되면 있어야 할 곳을 알리는 알람을 듣지 못했다. 언제부터 먹지 않았는지 세상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깊은 허기에 현기증이 났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것이 공상이었다니. 프로젝트 번호를 보자마자 시간의 명암이 대조되었다. 그 대조를 상상하느라 순식간에 지난 세 시간을 나는 사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들어가야 할 입구를 만들고 나서, 벌컥 들어가지 않고 앞에서 서성이는 희열을 느끼고야 만 거다. 반 발자국 갔다가 한 발 뒤로 물러서 문틀에 샅샅이 눈길을 주고 문 저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빛을 감지한다.
알 수 없는 미래,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거다. 내 공간에 두어야 할 철학을 생각하고 곳곳에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어떤 형태의 시선을 주고받을지, 분위기는 어떨지, 시선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한다.
정확한 수치가 없으니 무한대의 자유가 날개가 된다. 어떻게 이어질 건지 어디서 가까워졌다가 어디쯤에서 보낼 건지 내가 닿을 거리를 가늠하고 내가 놓은 다리를 건너 더 넓은 곳으로 자라나는 힘을 목격한다.
실제로 어떻게 움직일 건지 요일을 확인하고, 해가 떠 있는 자리로부터 그늘의 넓이를 계산하기도 한다. 건물로 따지면 구조를 구체화시키는 거다. 창문은 어디에, 어떤 재료로, 조도는 얼마나, 거기에 들어올 사람들은.
바닥에 서서 조감도를 그린다. 새가 날아가며 물어다 준 판타지 입체 공간에 내가 발 붙이고 서서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강의 거리와 위치를 정하는 거다. 닿을 피부의 온도를 느끼고 허리를 숙이고 길을 알려주는 거다.
같은 언어 아래 다른 의미의 퍼즐을 맞추러 모여든 영혼을 보듬는 일, 그런 공상 저런 상상, 흠뻑 뜨거운 생명의 시간이다.
채워질 듯 아닐 듯 불안정하게 들뜬 상태의 빛을 들고, 어느 미래에 놓인 시작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일, 그 흥분과 몰입이 좋다. 그 공복의 아우성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