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할 날에 대한 준비

[단상] 지금 가을 겨울

by서희복

특별관 무료 티켓은 커다란 화면이 아니어도 괜찮다.


산발한 외계인의 슬픈 눈이 남았으며, 쫄쫄한 거미줄에 절절한 마음이 솟구쳤다. 날고 싶다.


오른쪽 옆에 앉은 여자가 코와 입을 오른손으로 막고 훌쩍이는 것을 들었다. 운명을 바꾸라는 말을 거미인간 입속에 구겨 넣고 내가 우적거린다.

스크린엑스의 늘어진 양 날개에 침을 놓았다. 외계인 1점, 거미 4점, 왼쪽 남자가 한 줌씩 입에 넣는 팝콘이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서 폭발한다. 가끔 놀라 두리번거렸다. 다 먹었니?


여름 끝에는 영화 속 음악으로 들어갈 거다. 비발디의 겨울을 끌어다가 덮고 자고 일어난다. 가득 채운 바이올린 소리가 좋다. 혼자가 된 길에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아름답겠다.


내가 싫어한댔던 글들에 달린 그의 다정한 댓글들이 찬란하다. 가슴도 후비고 귀도 후비고 코도 후비고. 눈물 아닌 척 광속으로 얼굴을 씻다가 새끼손가락이 코에 들어갔다. 빨간 피가 철없다. 그래서 떠나는 거다. 음악을 찾아, 영화를 보러.


긴 겨울 여행은 벌써 준비해 두고 쓸쓸한 가을 초입을 걱정한다. 가까운 고독을 잘 처리할 용기를 펌프질 하고 있다. 남은 보드카를 냉동실에서 꺼내 하수구에 쏟아 버렸다. 아무래도 너 때문이다. 무언가 시작하려면 안 하던 짓으로 하는 것이 좋다.


주사대신 약을 달랬더니 커다란 눈으로 경멸을 세게 던진다. 손으로 문지르기 싫어요. 벙어리가 된 손이 갈겨쓴 처방전으로 받아낸 약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결과는 건강 명랑 쾌활하다. 그런데 왜? 결단이 필요하다.


곧 쓸쓸하게 불 바람을 생각하면서 벌써 허해진다. 뜨거운 7월 마지막 날의 태양을 피해 지하로 지하로 숨어든다. 마음 근육을 불리려면 몸부터 쥐어 짜야한다. 몸 근육을 키우려면 마음의 평야가 초록이어야 한다. 밖은 온통 초록인데.


장 뤽 고다르를 예매해 두고 벌써 속이 울렁거린다. 인간의 비린내는 추하다. 예매확인을 못하는 건 좌석 위치를 보려다 예매취소를 누를까 봐. 나의 추함이 들통나면 따라붙는 경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이다.



그래서 근육을 불리러 간다. 몸 근육, 마음 근육, 그리고 떠난다, 훨훨. 서늘할 날로 돌아오지 않으러.